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마실거리 생활문화의 재발견

조운호 <웅진식품 대표이사>

생활문화의 중심인 의(衣)·식(食)·주(住)에 있어 의와 주는 시대 흐름에 따라 유행과 변화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왔으나 식은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고 큰 변화 없이 그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지역성을 띠고 있다. 가공산업의 발달에 의해 보다 맛있고 편리하게 포장된 다양한 가공식품이 개발되고 있어 변형이 쉬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가공식품의 기본 정의가 1차 농수산물의 특성을 살려서 제품화한 점을 보더라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지만 그 본질적 속성은 변화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생활문화로서의 식문화가 ‘신토불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지ㆍ기후와 같은 환경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도 지역적 폐쇄성을 띠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지역 환경에 기반으로 얻게 된 음식문화는 그 지역 안에서 나고 자란 작물을 소재로 조리하고 입맛도 여기에 길들어져왔기 때문에 그 변형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음식은 크게 주식ㆍ부식과 후식으로 나눌 수 있다. 주식과 부식이 신체 에너지원으로서 영양을 공급해준다면 후식은 주식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요소를 보완해줌과 동시에 음식 섭취 이후의 음식냄새 제거와 신선감을 제공해준다고 하겠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후식에 있어서도 지역에 따라 고유한 형태의 후식이 발달했다. 서양의 경우 주식과 부식이 육식 위주의 기름지고 느끼한 맛을 제공하기에 식후 이러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탄산음료ㆍ홍차ㆍ커피와 같은 후식이 발달했다. 이에 반해 동양음식은 채식 위주의 담백함과 깔끔함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극적이기보다 속을 보완해주는 후식을 발달시켜 왔다. 특히 한국의 식탁의 경우 맵고 짜고 절인 발효식품이 주류인 반찬 때문에 매운 기운과 발효식품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다양한 후식이 발달했다. 밥을 짓고 난 후 물을 부어 끊인 보리 숭늉을 마시는 후식문화는 한국인만이 가지는 독특한 곡차문화라 하겠다. 더불어 지역에 나는 뿌리ㆍ열매ㆍ줄기ㆍ잎 등으로 과실차ㆍ잎차ㆍ뿌리차와 같은 차문화를 발달시켜온 것도 오랫동안 지속돼온 우리네 후식문화라 하겠다. 이제 현대에 들어와 식탁은 거리로 나와 이를 축소시킨 음식문화를 발달시키고 있다. 서양 식탁의 경우 메인 디시를 축소해 빵에 고기ㆍ햄ㆍ야채ㆍ소스를 넣어 만든 햄버거로 한끼의 메뉴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기름진 맛을 제거하고 고기의 소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후식인 탄산음료와 커피 등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한국 식탁의 경우도 밥과 다양한 반찬을 포함한 도시락이라는 한끼의 식사로 축소돼 거리로 나오고 있다. 도시락뿐만 아니라 가공밥ㆍ가공반찬류도 쏟아져나오고 있어 전통 식문화의 기본은 해치지 않되 현대적 가공을 더한 주식문화가 편의화ㆍ산업화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주식문화의 현대적 가공이 이뤄지고 있는 데 비해 주식을 뒷받침하는 후식은 서양의 후식인 탄산음료나 커피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 균형적인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후식에 대한 다양한 산업적 활동은 현재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우리네 후식문화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열매ㆍ뿌리ㆍ잎을 이용했듯이 변화지 않는 주식문화에 적합한 후식 가공산업의 발달은 매우 필요하다. 예컨대 순창의 복분자, 고흥의 유자, 광양의 매실, 제주도의 오미자와 같이 각 지역 내 특산물인 이들 작물을 잘 가공해 후식 음료로 개발한다면 음료가 가지는 갈증해소는 물론 약성이 있는 이들 작물을 통해 주식에서 제공받지 못한 약성을 섭취하는 지혜까지 얻게 될 것이다. 서양에서 이미 ‘위드 푸드(with food)’라는 컨셉트로 다양한 후식문화를 발전시키고 세계 속에 식품과 음료가 전파됐듯이 국내에서도 산업계와 관계ㆍ학계가 상호 협력해 선조들의 다양한 후식문화로서의 대용차를 개발해야 한다. 산업계에서는 다양한 가공식품에 대한 연구개발을, 학계에서는 이들 특산 작물이 가지는 약성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관계에서는 정책적 뒷받침을 각각 수행할 때, 우리의 후식문화는 국내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의 후식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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