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좋은 사람보다 운수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무서운 법이다. 호주의 로버트 앨런비(36)가 예리한 아이언 샷 감각에 행운까지 따라주면서 미국 PGA투어 시즌 3번째 대회인 봅호프크라이슬러클래식 첫날 단독선두에 나섰다. 앨런비는 1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의 라킨타CC(파72ㆍ7,060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9언더파 63타를 쳐 공동2위 마크 캘커베키아와 크레이그 카나다(이상 65타ㆍ미국)를 2타차로 제쳤다. 지난 2000년과 2001년 2승씩을 올린 뒤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그는 이날 보기 없이 9개의 버디만 쓸어담는 깔끔한 경기를 펼쳤다. 그린적중률 100%의 컴퓨터 아이언샷이 뒷받침됐지만 행운 덕도 톡톡히 봤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이상한파로 코스에 서리가 내리면서 출발시각이 1시간 늦춰졌으나 앨런비는 덕분에 온화한 날씨 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특혜’를 누렸다. 경기 지연으로 얻은 이익은 이뿐 아니었다. 대회장에 도착하고서야 호텔 방에 퍼터를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늦춰진 티샷 시간 전에 건네받을 수 있었다. 이 ‘행운의 퍼터’로 그는 8m짜리 2개 등 3~4차례나 6~9m의 먼 거리 버디 퍼트를 홀에 떨궜다. ‘코리안 영건 듀오’ 나상욱(23ㆍ코오롱)과 앤서니 김(22ㆍ한국명 김하진)은 희비가 엇갈렸다. 나상욱은 클래식코스(파72ㆍ7,305야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치며 공동19위로 자신의 시즌 첫 라운드를 무난하게 치른 반면 루키 앤서니 김은 버뮤다듄스(파72ㆍ7,017야드)에서 1타도 줄이지 못해 공동95위까지 처졌다. 지난해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접었던 나상욱은 드라이버 샷 평균 303.5야드를 기록, 향상된 장타력을 과시하며 부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전날 공식 인터뷰에 초대되며 주목을 받은 앤서니 김은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한 듯 버디 3개를 보기 3개와 맞바꿨다. 올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세계랭킹 4위 필 미켈슨(미국)은 공동47위(2언더파)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앨런비와 같은 라킨타CC에서 더블보기 1개와 보기 3개를 쏟아낸 그는 그러나 10번홀부터 4연속 버디 등 7개의 버디를 뽑아내며 무뎌졌던 실전감각을 가다듬었다. 슬럼프를 겪고 있는 왕년의 세계 1위 데이비드 듀발(미국)이 공동12위(5언더파)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듀발은 99년 이 대회 최종 5라운드에서 59타를 치며 우승했지만 2000년 이후 PGA투어 대회에서 공동48위 이상 올라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