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이탈을 막느냐, 마진하락을 막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은행권이 지난해 하반기 판매했던 십수조원대 규모의 고금리 예금특판 만기가 잇따라 도래하면서 만의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자금 이탈 가능성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주요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이 지난해 9~10월 금융위기 상황에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판매했던 고금리 정기예금 금리는 연 5~7%선. 이에 비해 최근 시중은행 정기예금은 3%선에 머물러 있고 일부 은행만 4%대 특판 상품을 출시했지만 기존 특판예금 가입자를 만족시키기에는 아직 여의치 않다. 현재 제1금융권에서 특판예금을 판매하고 있는 곳은 하나은행과 기업은행ㆍ한국씨티은행 등이다. 이 가운데 기업은행은 정기예금 상품인 ‘녹색성장예금’에 최고 연 4.4%의 금리를 적용하며 이달 말까지 고객을 잡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보통예금인 ‘참 똑똑한 A+통장’에 최고 연 4.2%의 이자율을 적용해 적극 판매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자사의 주가지수연동예금(ELD) 중 일부 상품에 가입한 정기예금 고객에 한해 4.5%의 확정금리를 적용하며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해당 은행이 이보다 더 높은 금리로 추가 특판예금 상품을 내놓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은행권 전체가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기업의 대출수요 감소로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수신자금도 버거워 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예금 고객에게 고금리를 주며 수신자금을 끌어들여 봤자 경영 수익성 지표만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에 따라 다른 은행들도 특판예금 판매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당분간은 고금리 정기예금 판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국민ㆍ우리은행 등도 특판 마케팅 대열에 참여할지 여부를 놓고 아직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축은행들은 특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속사정은 제1금융권과 다르지 않다. 최근 Wㆍ제일ㆍ대영저축은행이 잇따라 연 5%대 금리의 1년 만기 예금을 출시했고 프라임저축은행은 6개월 만기 상품에도 연 최고 4.3%의 금리를 주는 예금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저축은행들은 하반기에 자산건전성을 더욱 다져야 하는 상황인 만큼 이렇게 고금리로 끌어안은 자금을 적극적으로 대출 영업으로 돌릴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증권사들이 최대 연 4%의 금리를 제시하며 공격적인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대한 영업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은행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은 CMA에 비해 금리 측면에서 특별히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특판예금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제1금융권의 고민이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이 펀드나 보험 판매수수료 등과 같은 비이자 영업에 한층 매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이 자칫 또 다시 묻지마식 펀드ㆍ보험 가입 열풍을 일으키게 되면 제2ㆍ제3의 금융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은행들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