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초라한 국산와인 30돌

“한국 소비자들은 유난히 수입 와인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난 8월 말 미사주용 마주앙 포도수확 축복식을 취재하기 위해 두산주류의 경북 경산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축복식은 미사주용으로 담글 그 해 포도의 첫 수확에 대한 감사의식으로 이날 행사는 두산주류가 지난 77년 로마 교황청의 승인 아래 와인을 공급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이는 마주앙 탄생 30년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산 공장 관계자의 하소연에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국산 브랜드 와인의 안타까운 현실이 담겨 있다. 국내 와인시장에서 수입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급증해 90%를 넘어서고 있다. 국산 브랜드 와인의 시장 점유율은 고작 10%. 한자릿수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과거 해외 유명 언론으로부터 ‘신비의 와인’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시장의 70%를 장악했던 한 때의 영화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서른살의 모습이다. 더욱이 국산 포도의 경우 품종이 와인에 적합치 않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국산 포도로 만든 와인은 물론이고 100% 수입 포도로 유럽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된 국산 브랜드 와인마저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자국 브랜드 와인의 시장점유율이 25%에 달하고 있는 일본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국산 브랜드 와인이 이처럼 고사 직전까지 놓이게 된 데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좋은 와인=수입 와인’이라는 등식이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할인점이나 백화점에 가도 수입 와인은 홍수를 이루고 있는 반면 국산 브랜드 와인은 사고 싶어도 결코 찾기가 쉽지 않다.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이후 저렴한 가격대의 칠레산 와인이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의 수입 와인 선호도는 더욱 높아졌다.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이유로 과거 국산 와인을 만들어오던 일부 업체들도 수입 와인 판매로 돌아서버렸다. 5월 한국을 찾았던 세계적인 와인메이커이자 와인평론가 미셸 롤랑은 “좋은 와인이란 건 따로 없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 곧 좋은 와인”이라는 말을 남겼다. ‘좋은 와인’을 결정하는 건 가격이나 원산지ㆍ제조자와 같은 획일적 요인이 아닌 어디까지나 와인을 직접 맛보는 소비자의 몫이라는 의미다. 국내 와인업체 역시 당장 돈이 되는 수입에만 의존도를 높이기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지 않는 국산 브랜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되돌아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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