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5년간 유예하기로 한 노사합의를 거부한 것은 노사관계법ㆍ제도의 선진화란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당초 정부는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이 5년 유예안을 마련했을 때 노사합의를 존중한다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로 인해 노ㆍ사ㆍ정이 다시 충돌하게 될 경우 책임을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5년 유예안’은 한국노총과 재계가 현실을 감안해 마련한 절충안이다. 노조전임자 임금금지는 중소기업 등의 노조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복수노조는 자칫 노동계가 큰 혼란에 빠지고 사용자측에 큰 부담이 된다는 현실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정부가 내년 시행을 위해 입법예고 하겠다던 태도를 유보하고 노사합의를 평가했던 것도 이 때문인데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정부가 태도를 바꾼 주요 이유는 5년 유예안이 노사관계법 등의 선진화란 3년 동안의 논의를 헛되이 하는 등 참여정부의 노동개혁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과 노동계 일부의 반대 때문으로 보인다. 개혁도 중요하지만 우리 현실에 맞아야 한다. 두 조항이 이미 두 차례나 유보된 것은 우리사회에 미치는 파괴력이 컸기 때문이다. 이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개혁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정부는 입법예고를 강행하기 보다는 경총과 한국노총의 합의안을 고려해 새로운 절충안을 마련하는 유연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치권에 기대하기 보다는 정부가 절충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알려진 사업장 규모별로 전임자수를 정하고 임금을 지급하다가 2~3년 후 금지하는 등의 2~3년 연기안은 검토해 볼만하다.
이것은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를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5년 유예안에 대해 이견을 보인 노노충돌을 피하고 기업도 복수노조 허용에 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정부는 노사가 모처럼 합의한 5년 유예안의 뜻을 살리지 못하면 노ㆍ사ㆍ정 관계가 노노는 물론 노사정 충돌로 이어질 우려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