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그레이트 체인지 코리아] "지방·中企·자영업자·농민 위한 친서민정책 강화해야"

[특별 인터뷰] 박승 前한국은행 총재<br>전산업 경쟁력 갖춰 구조조정 완결때 양극화 해소<br>지난50년 비약 성장은 근면성·교육열·리더십의 힘<br>한국경제 재도약 위해선 '물질'보다 정신개혁 필요



"양극화 해소는 구조조정의 완결판입니다. 모든 산업이 대외경쟁력을 갖춰 구조조정이 끝나는 때가 바로 양극화가 해소되는 시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지방과 중소기업ㆍ가계ㆍ자영업자ㆍ농민 등을 위한 친서민정책이 강화돼야 합니다." 박승(74ㆍ사진) 전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서울경제신문 창간 50주년을 맞아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한국의 근대화ㆍ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양극화의 근본원인은 개방경제에 따른 필연적인 환경 변화"라면서 "이 과정에서 경쟁우위 부문과 열위 부문 간 격차가 심화되는 데 따라 수반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특히 "노무현 정권 시절 모든 정책의 초점이 친서민에 맞춰졌으나 결과적으로 고소득층과 대기업만 이익을 보고 중소기업ㆍ자영업자는 손해를 보는 이른바 '노무현의 역설'에 부딪히게 됐다"며 "이명박 정권도 고성장 정책에서 이제야 친서민정책으로 돌아섰는데 역풍을 이겨내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경제 산업화의 초석을 다진 지난 1980년대 청와대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 등을 지냈고 노무현 정권 시절 한은 총재를 지내면서 한국 경제의 발전과 호흡을 같이한 박 전 총재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만나 1980년대 한국 경제 산업화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습니다. 한국의 산업화는 한마디로 역동성 그 자체입니다. 전세계는 한국을 일컬어 '다아내믹 코리아'라고 하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맞습니다. 지난 50년 한국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습니다. 여러 선진국들이 200년 이상 걸린 산업화를 5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압축성장으로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이면에 한국의 산업화ㆍ근대화는 위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광복을 거쳐 6ㆍ25전쟁을 비롯해 5ㆍ16 군사혁명, 10월 유신, 10ㆍ26 사태, 12ㆍ12 군사반란, 그리고 1980년 5ㆍ16 민주화항쟁 등 말 그대로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혼란과 빈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 산업화 초기 국가예산의 70%는 원조였고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면서 외채위기와 기업 부실, 1972년 8ㆍ3 사채동결, 1970년 오일쇼크, 1982년 기업 통폐합, 1990년 외환위기 등 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난 속에서도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면서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습니다. -이 같은 역동적 발전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다른 표현으로 다이내믹 코리아의 저력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크게 세 가지 측면입니다. 우선 우리 국민의 근면성입니다. 잘살아보겠다는 강력한 상승욕구죠.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는 배고플 때 배고픔만 해결하면 일을 안 하지만 우리 국민은 꾸준하게 잘살아야 한다는 욕구가 강해 열심히 일하는 점이 다릅니다. 두번째로 유교문화에 비롯한 교육 중시 사상입니다. 부모들이 굶어 죽어도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현재 자식들 세대보다 후대를 중요시한다고 할 수 있죠. 이 같은 교육열로 값싼 노동력에 우수한 인재가 결합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이스라엘과 한국 두 나라가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계획경제를 내세워 한국인의 근면함을 이끌어내 경제발전을 달성했다는 것입니다. -다아내믹 코리아로 불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에서 나타난 역동적 모습이 다른 선진국들의 산업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두 가지 측면에서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모방이익, 즉 개방경제체계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모방이란 말 그대로 남의 것을 따라 하는 것으로 후진국의 경제발전에 있어 핵심정책입니다. 다른 하나는 중간 과정이 대부분 생략된 빠른 성장을 달성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과 독일 등은 농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여기에서 얻은 이익을 저축해 공장을 짓고 수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외자 도입을 통한 자본으로 곧바로 수출하고 급속한 산업화를 달성했습니다. 현재는 중국이 우리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이 유선전화 시대를 뛰어넘어 곧바로 핸드폰 시대로 가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역동적 경제발전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또는 한국 경제만이 갖는 특유의 경제발전 모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정부 주도적 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가장 먼저 외자를 도입해 공장을 짓고 수출 기반을 다졌습니다. 여기에 저가 양질의 노동력을 결합시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의 반복으로 수출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고 다시 투자해 수출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산업화 과정입니다. -한국 경제의 산업화ㆍ근대화 과정에서 정부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리더십을 높이 평가합니다. 다만 유신 이후의 독재는 잘못됐습니다. 그러나 1960년 초기 박 전 대통령의 군사독재에 따른 권위주의 리더십은 산업화에 공이 큽니다. 그러나 이런 리더십은 산업화 초기에만 유효하다고 봅니다. 산업화 성숙단계에서는 어느 나라도 안 통합니다. 따라서 산업화 성숙단계에서는 국가의 권력 대신 민간의 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의해 스스로 조정돼야 합니다. 즉 자율적 민주주의 리더십입니다. 국민의 통합과 시장질서에 의해 국민경제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후배들 또는 후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삶의 질 선진화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물질보다는 정신개혁이 앞서야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못살 때 개개인의 생활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쌀ㆍ옷ㆍ자동차 등 물질욕구가 강했지만 지금은 모든 국민이 다 잘사는 공공재, 즉 교육과 환경ㆍ의료ㆍ복지ㆍ교통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과거처럼 나만 잘살면 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는 함께 잘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공공재가 필요한데 개인저축이 아닌 사회저축을 많이 하고, 세금 많이 내고, 기부도 많이 하고, 재산 환원과 사회봉사 등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남북 통일에 대한 시각입니다. 현재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남북 통일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합쳐지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약력 ▦1936년 전북 김제 ▦이리공고ㆍ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1년 한국은행 입행 ▦1976~2001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986년 금융통화운영위원 ▦1988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1988~1989년 건설부 장관 ▦1993~1996년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1997년 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2001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2~2006년 한국은행 총재
금통위 독자 결정권 확보등 한은 독립성·위상제고 힘써
■박승 前 총재는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가장 노력한 총재, 한국은행을 가장 사랑한 총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한국경제 발전의 살아 있는 증인'으로 불린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1976~1988년)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1988년), 건설부 장관(1988~1989), 대한주택공사 이사장(1993~11996년), 한은 총재(2002~2006년)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경제의 발전과 호흡을 같이했다. 한국경제를 오늘날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요 관료 중 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박 전 총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관료시절이 언제냐고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한은 총재 때를 꼽았다. 박 전 총재는 "정말 성심을 다해 일했고 모든 힘을 다 바쳐 소신껏 일했다"고 자긍심을 드러냈다. 이 같은 자신감은 총재 재직시절로 되돌아가면 잘 나타난다. 임기 초반 정부의 입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뚝심'으로 금융통화위원회의 독자적인 결정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중앙은행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조직개편, 각종 인재양성 프로그램 등을 시행해 금융권 안팎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화폐제도 개혁 성과도 매우 뛰어났다는 평가다. 화폐선진화 방안으로 세 가지를 추진했다. 우선 최근 발행된 1,000원권과 1만원권 신권을 비롯한 고액권인 5만원권 발행을 위한 근간을 마련했다. 또 위폐방지ㆍ도안혁신을 꾀했고 마지막으로 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단위 절하)를 추진했다. 이 중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친 디노미네이션만 제외하면 성공적인 화폐 선진화를 이룬 셈이다. 이처럼 박 전 총재의 한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대학 졸업 이후 당시 최고 직장이었던 한은과 첫 인연을 맺은 데서 비롯한다. 덕분에 한은 해외유학 장학생 1호로 선발돼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후 중앙대 교수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 등 학계와 정부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경력을 쌓게 된다. 그러다 2002년 친정인 한은 총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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