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행복 점수

강남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한 부동산중개업소 전광판에 ‘행복을 중개합니다’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좋은 물건을 소개해서 돈을 벌게 해드리겠다는 의미인 듯싶은데 지난 십여년 동안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은 강북의 개인주택에 살고 있는 필자에게는 상대적인 빈곤감만 느끼게 할 뿐 아니라 ‘행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남용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행복에 관련해서 모일간지에 실린 통계를 읽은 기억이 있다. SWLS(Satisfaction With Life Scale)라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행복도 측정 조사기법을 사용해 국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의 평균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스웨덴 국민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한국 일반 서민들의 행복점수는 이보다 한참 뒤져서 인도 칼카타시의 슬럼(최저소득층 거주지역) 거주자보다도 낮을 뿐 아니라 조사 대상 그룹 중에 가장 행복점수가 낮은 미국 캘리포니아 노숙자보다 약간 높은 점수에 불과했다. 아무튼 이 통계가 믿을 만하다면 대부분의 한국 일반인들은 상대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아마도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비교가 안될 만큼 더 많은 우리 인생에서 소수의 특별한 성공이 가져다주는 성취감만을 가치 있게 생각하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살아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심리학자 말대로 불평 불만이 쌓일 때 사람은 가장 불행하게 되니 요즘같이 일반 서민들에게 팽배해있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빈곤감이 불평 불만을 부추겨 일상 생활에서 행복에 대한 불감증을 일으키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행복론은 무엇인가’ 하고 자문은 해보지만 자신 있게 뭐라고 대답하기가 궁색하다. 가정이 평화롭고 부부 금슬이 좋은 것, 자식들이 서로 아끼며 건강하고 밝게 살아주는 것. 이런 행복론이 너무나 작고 상식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필자같이 회사 일에 파묻혀 집안일을 돌보지 못한 직장인들이 살아오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행복의 조건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비록 작더라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때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이를테면 “집값이 안 오르면 어떠랴. 계절마다 마당에서 피는 색다른 꽃들을 보며, 텃밭에서 키운 깻잎과 상추를 상에 올리고 풍성하게 열린 감을 따 이웃과 나누면서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겠는가’” 하고 뜬금없이 말해보면 어떨까. 초인종 소리에 이런 상념에서 깨어났다. 동창회에 갔다온 집사람의 입이 한줌은 나와 있다. 아마도 강남에 사는 친구들에게서 아파트 가격이 무척 올랐다고 자랑하는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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