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선택의 순간들 <16·끝> 두산의 대우종합기계 인수

"중공업그룹 도약 발판" 과감한 베팅<BR>경쟁사보다 무려 1兆더 써내 우선협상자 선정<BR>노조 반발·출총제 위반 겹쳐 인수난항 겪기도<BR>매출 늘고 中에 첫 해외지주회사 설립 '겹경사'

지난 2004년 1월 두산타워 31층 중역 회의실. 두산그룹의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장에 속속 모여들었다. 자리에 앉은 CEO들은 미리 준비한 메모지를 꺼내 읽느라 회의장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잠시 후 회의가 시작되자 김대중 당시 두산중공업 사장은 대우종합기계(이하 대우종기) 인수를 위한 간단한 보고를 시작했다. 곧바로 대우종기 인수에 비판적인 CEO들의 반론이 터져 나왔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 인수 등으로 숨가쁘게 달려온 그룹에 부담을 안길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이날 긴급 사장단 회의에 모인 참석자들은 대체로 대우종기를 놓치기 아깝다는 점에 공감하고 곧바로 자금 조달 등 구체적인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기업 두산이 식음료그룹에서 중공업그룹으로 의 거보를 힘차게 내딛는 순간이었다. 김진 두산그룹 부사장은 “대우종기는 내부 역량이나 실적, 중국에서의 시장 점유율 면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보한 기업이었다”며 “내부적으로 한번 결론이 난 만큼 반드시 인수에 성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모두가 혀를 내두른 승부수=지난 2004년 10월 27일 발표된 대우종기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재계 전체를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당초 예상대로 두산과 팬택, 효성 등 3곳이 나란히 포함됐지만 해당업체가 써낸 인수금액에서 엄청난 격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당시 인수금액으로 1조8,000억원을 제시해 팬택(8,000억원)에 비해 무려 1조원이나 높게 베팅했다. 또다른 경쟁자인 효성(1조3,000억원)보다도 5,000억원 이상을 높게 써낸 것이다. 두산의 과감한 베팅은 당시 두산중공업이 연말까지 1조원 이상의 현금 확보가 가능하고 매년 3,000~4,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녹아져 있었기에 가능했다. 익명을 요구한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대우종기는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권단 관리로 인해 투자나 채용, 연구개발(R&D)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해 깜짝 놀라게 했다”고 설명했다. 두산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당일 내놓은 대우종기 발전전략도 치밀한 인수전략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날 발표한 내용은 ▦3~4년내 기계사업 분야에서 매출 100억 달러 달성 ▦10년내 200억 달러 달성 ▦대우종기의 중국 및 유럽 네트워크와 두산중공업의 중동ㆍ인도ㆍ동남아 시장을 접목시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복안이었다. ◇마지막 고비를 넘다=하지만 두산그룹의 대우종기 인수전은 초반부터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대우종기 노조는 본계약 체결 보름을 앞두고 고용보장과 주 5일제 근무 등에 대한 약속을 믿을 수 없다며 결사반대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두산그룹측이 몇 차례 설득 작업에 나섰지만 모두 허사였다. 당시 대우종기 노조원들은 6년이라는 워크아웃과 채권단 관리기간 동안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로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을 때였다. 이 과정에서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내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두산중공업 노사 관계에서 노사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두산중공업 노조가 설립 17년만에 처음으로 사측과 무분규 타결을 이끌어냈다는 소식은 대우종기 노조원들의 마음을 사흔들었다. 결국 대우종기 노조원들 사이에 두산그룹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출자총액제한 규정 위반도 골치거리로 등장했다. 두산그룹의 출자한도가 4,000억원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1조8,000억원을 주고 대우종기를 인수할 경우 출자총액한도를 초과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다는 점도 논란을 빚었다. 김진 두산그룹 사장은 이와 관련, “그룹측의 기계산업 의지가 확고한 상황에서 예상치도 못한 공정거래법 위반 시비는 그룹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고비였다”며 “하지만 공정위가 대우종기 인수는 출자총액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유권해석을 내려줘 그룹측으로선 중공업 그룹 도약을 위한 날개를 달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젠 중공업그룹으로 도약=지난 11월 7일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과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 등 두산 오너일가들이 모처럼 중국 베이징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두산그룹의 11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소중한 자리에서 오너 일가들은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인수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가격이라며 자금난까지 우려됐던 두산이 중국에서 지주사 설립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대우종기가 중후장대산업으로의 도약에 나선 ‘뉴 두산’의 소중한 발판이자 재도약의 디딤돌로 정착됐다는 확신은 이제 아무도 의심치 않는다. 최승철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기자와 만나 “인수 초기 가장 시급한 과제는 회사명 변경에 따른 고객과 딜러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일이었다”며 “불과 1년여의 짧은 기간에 오히려 두산인프라코어는 글로벌 네트워크 확충과 신사업 추진으로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두산그룹의 첨병으로 올라섰다”고 강조했다. 두산그룹의 M&A 성공 이후 두산인프라코어의 변신도 눈부시다. 지난 2004년만해도 매출액이 불과 2조 원대의 회사가 올해 3조원을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오는 2010년까지 매출 10조원, 중국 시장에서만도 3조원의 매출을 목표로 전 세계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 해외 수출용 제품 브랜드 역시 ‘대우-두산’에서 내년에는 두산 단일 브랜드로 전 세계 기계시장을 누빌 예정이다. 또 최근에는 전 세계 기계사업 사상 최초로 25개의 지게차 모델에 대한 풀 모델 체인지를 단행해 파격적인 실험도 시작했다. 中진출 10년만에 100배 성장 두산 굴삭기 ‘신화창조’
차별화된 마케팅 철저한 현지화로 고마쓰등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 지난 4월 중순. 중국 산둥(山東)성의 두산인프라코어 옌타이(煙臺) 현지법인 공장마당에 수십대의 굴삭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지 주정부 관계자들과 지역 주민들까지 초청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는 중국에서의 굴삭기 누적판매 3만대 돌파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중국 진출 10년만에 100배의 성장을 일궈낸 두산인프라코어의 성공사례는 중국 현지에서도 하나의 신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96년 중국에 진출한 두산인프라코어는 첫해 79대의 굴삭기를 판매하는데 그쳤지만 10년만인 올해 7,000대까지 판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고마쓰와 미국의 캐터필라 등 유수의 업체들을 제치고 최단기간에 거둔 놀라운 실적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클 수 밖에 없다. 최승철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은 "중국시장은 내수판매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를 자랑할 만큼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이라며 "중국을 단순 판매기지가 아닌 연구개발(R&D)에서 마케팅까지 모든 기능을 갖춘 제2의 홈마켓으로 구축할 계획"이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두산인프라코어 굴삭기가 이처럼 단기간에 중국대륙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차별화된 마케팅전략과 각별한 현지화 노력 덕택이다. 시장 진출초기엔 한마디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당시 영업일선에서 뛰었던 박종채 두산인프라코어 베이징지사장은 "산서성 광산지역에서 작업현장을 찾아 헤매다가 식사 도중 우연히 발견한 덤프트럭을 무작정 따라가 현장을 확인한 뒤 사무실을 찾아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도전정신과 대리상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한 딜러망은 2000년부터 대우종합기계 굴삭기가 중국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기반이 됐다. '분할상환판매'라는 파격적인 결제방식도 중국시장 공략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다. 올해로 설립 12년을 맞는 옌타이법인은 1,000명이 넘는 현지 직원의 경조사를 꼬박꼬박 챙긴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을 강타했던 지난 2003년 4월초에는 현지에서 예방약으로 통했던 반란근 1주일분을 모든 직원들에게 나눠줬을 정도다. 의사소통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중국법인 주재원은 법인 설립 이전부터 준비한 화교나 중국어 전공자들로, 북경대외경제무역대학에서 1년 이상 연수를 거쳐야만 현장에 배치될 정도다. '희망공정'(希望工程)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01년 굴삭기 누계 생산ㆍ판매 5,000대 돌파를 기념해 5,000호기 판매대금 75만위안(약 1억1,000만원)을 중국 정부의 소학교 설립 프로젝트에 기부하면서 희망공정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회사측은 앞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현지에 지주사와 할부금융사를 설립하는 등 다각적인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최 사장은 이와 관련 "지주사와 할부 금융사 설립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중 하나"라며 "중국시장을 내수시장으로 삼아 공략의 고삐를 조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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