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美 정부, 현실 냉철히 인식해야

“기독교는 다 좋은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한번도 심판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신랄한 사회 비평으로 유명했던 조지 버나드 쇼가 한 말이다. 나는 세계 주요국의 현재 거시 경제정책에 대해 쇼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다. 지난 수백년간 경제 역사를 보면 어떤 정책이 경제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가나 유권자들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있다. 일본 경제는 후퇴는 아니더라도 겨울잠을 자고 있다. 한때 미국ㆍ일본과 함께 세계 경제의 3각축을 형성하던 독일은 프랑스와 사이 좋게 EU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는 거시 경제정책으로 풀 수 없는 사상 초유의 딜레마에 빠진 것인가. 마치 아프리카 등 빈민 지역에서 급팽창하고 있는 에이즈 환자에 마땅한 치료약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1929~1931년 지고지순의 명제로 여겨졌던 아담 스미스식의 순수 자본주의는 대공황 앞에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다.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시장이 전세계적으로 폭삭 눌러 앉았다. 세계는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지도 않았고 혁명적인 경제 체제가 들어서지도 않았다. 낯설긴 하지만 과감한 정부 재정 확대와 지출이 투자와 고용을 촉진했고 결국 유럽ㆍ미주ㆍ아시아의 대공황을 종식시켰다. 이른바 포스트 케인즈 시대라 불리는 1950년대부터 각국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절한 거시 경제정책을 구사, 실업률과 인플레 및 디플레 문제에 대처했다. 물론 완벽한 거시 경제 정책이란 없다. 경제학은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현재 누구나 인정하는 정통 정책이 있는 것인가. 물론 없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마다 각기 다른 경제 정책을 조언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엉터리 정책이고 어떤 것이 합리적 대안인지는 구분할 수 있다. 두 번의 버블 붕괴로 10년 넘게 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은 정치가ㆍ유권자ㆍ 기업인ㆍ소비자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적절한 거시 경제 정책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어떤가. 그들은 1945~1970년 유럽 대륙을 이끌던 견인차였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미 연준리 의장인 폴 볼커와 앨런 그린스펀 같은 현명한 선장을 갖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분데스방크의 행적을 보면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결단력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사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 중앙은행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기준 금리로부터 자유롭게 자신들의 금리를 결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유럽 중앙은행은 아일랜드ㆍ핀란드에서부터 이탈리아ㆍ프랑스ㆍ독일에 이르기까지 서로 경제 상황이 다른 국가들에게 모두 무리가 없는 통화정책을 펴야 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 입장에서는 항상 입 맛에 맞을 리가 없다. 혹자는 독일이 유로 통화정책으로부터 자유롭다면 독일 정부가 현재 11%에 달하는 실업률을 절반으로 낮춰 미국의 5.7% 수준까지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림 없는 소리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미 유럽 연합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재정적자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없다. 영국은 좀 다르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도 유로 통화권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영국 중앙은행은 독자 행보를 할 수 있고, 미 중앙은행인 연준리처럼 금리를 신축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경기 침체와 인플레 우려에 현명하게 대처해 왔다. 영국 중앙은행에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미국을 보자. 불운하게도 미국의 거시 경제 정책은 현명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미국도 구조적인 인구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출산율 저하가 고착화돼 버렸다. 이렇게 되면 2020년까지 은퇴 인구는 급속히 늘어나는 반면 노동 인구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은퇴 증가로 연금 등 정부가 지출해야 할 돈은 많아지는데 경제 활동 인구가 줄어들면서 세수 기반은 약해져 재정적자가 가중될 것이 뻔하다. 인구가 전체적으로 노령화 하면서 성장 잠재력도 둔화할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우리의 거시 경제 목표는 저축률을 높이는 것이 돼야 한다. 저축률이 높아야 2020년까지 기업활동에 필요한 많은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인은 소비는 많이 하고 저축은 잘 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의 새로운 정책은 이 같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는 세금 감면을 통해 부자들의 기분만 좋게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점점 더 계층간 격차가 커지면서 불평등만 심화할 것이다. 역사가들은 `로비`로 표를 모으는 현재의 금권 민주주의를 지난 19세기말의 경제 호황시대에 비유한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처럼 이렇게 심하게 금권에 의해 표가 좌지우지 되지는 않고 있다. 또한 공화당 부시 정권은 상원과 하원, 양원을 장악해 운신의 폭이 넓은 데도 불구하고 바보스러운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심지어 보수적인 앨런 그린스펀 의장도 부시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부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이 경기 침체를 막아 줄 것이라는 부시의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부시 정책으로 가장 타격을 받을 사람은 미국인들이다. 그러나 점점 더 글로벌화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미국인에게 해가 되는 정책은 전세계 국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정부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폴 새뮤얼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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