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8(금) 17:55
【뉴욕=김인영 특파원】 멕시코가 또다시 외환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94년 페소화 폭락은 외국인 단기자금의 대량 이탈에서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멕시코 시중은행들의 막대한 부실 채권이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멕시코 페소화는 17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전날보다 0.6% 하락한 달러당 10.25폐소에 거래됐다. 이는 7월중 최고치였던 8.3에 비해 두달 사이에 23% 하락한 것이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통화 폭락을 저지하기 위해 이번 주초 초단기금리인 오버나이트를 한달 전보다 두배나 높은 40%로 인상했다. 그러나 살인적인 금리에도 불구하고 페소화 하락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멕시코 위기 재연은 정부가 국내 금융기관의 부실 여신을 정리하는데 너무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위기 첫해인 95년 멕시코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 비용을 77억 달러로 산정했다. 정부는 퇴출, 합병및 인수, 해외매각 등을 통해 19개 시중은행중 12개를 정리했다. 그리고 한국 성업공사에 해당하는 「예금보험기금(Fobaproa)」를 설치, 은행의 부실 여신을 안아 주기로 했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채권 탕감비용을 조달하는 어려운 방법 대신에 국내 채권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국채 발행규모는 위기초에 국내총생산(GDP)의 26%였으나, 현재는 42%로 늘어났다.
멕시코 재무부는 올초 경기가 호전되면서 세금으로 부실여신 정리비용을 조달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620억달러의 제원조달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비용은 4년전에 GDP의 3.5%였지만, 4년후에 16%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법안이 통과되면 멕시코 국민들은 이미 정부 복지예산의 40%가 깎여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30년간 은행을 살리기 위해 허리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다.
미국 동부 명문대 출신의 멕시코 재무관료들은 은행의 부실여신을 국세로 정리해야 돈이 돌고 경제가 살아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부도덕한 은행가와 기업인을 처벌하지 않고 가난한 농민과 근로자에게 세금을 전가하고 있다며 법안통과를 강력 저지하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아시아와 러시아 위기로 이머징 마켓의 해외자금 조달이 막힌 상태에서 야당이 법안을 저지하자, 외국인 자금이 빠른 속도로 멕시코를 빠져나가고 있다. 뉴욕 월가에서는 브라질과 멕시코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통화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부실여신 처리비용은 지난해 8월 GDP의 10%에 이른다고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분석한 적이 있다. 1년후인 지금, 그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났다는 게 국제 금융가의 시각이다. 방대한 부실여신을 처리하지 않은 채 은행퇴출과 합병만으로 금융개혁을 끝냈다고 장담할 경우, 한국에도 멕시코와 같은 제2의 환란이 닥쳐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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