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5월 29일] 苦유가의 긴 그림자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난리다. 인도네시아는 정부가 유가를 30% 올리자 국민들의 반정부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시민과 학생들은 “도저히 못살겠다”며 거리로 뛰쳐나와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며 정부퇴진을 외치고 있다. 기름을 펑펑 써 대던 미국인들도 바짝 움츠러들었다. 자동차여행이 줄어 숙박ㆍ여행업계가 울상이다. ‘기름 도둑’이 워낙 기승을 부려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본에서는 정차 중에는 시동을 꺼 기름을 아끼는 운전자들이 늘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원유수요가 많은 항공ㆍ해운업체들은 올해 대규모 적자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원가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석유화학업체들은 부득불 감산에 들어갔다. 화물연대는 정부와 물류회사들이 다음달 10일까지 고유가대책과 운송료현실화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운송을 거부하겠다고 나섰다. 택시기사들은 사납금도 채우지 못해 울상이다. 면세유값 인상으로 생업을 작파하는 농어가도 늘고 있다. 고유가의 긴 그늘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이 더 걱정이다. 고통은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차키브 켈릴 OPEC(석유수출국기구) 의장은 달러가치가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유가가 당분간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저널은 유가가 안정되지 않는 한 달러가치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가 오르니 달러값이 떨어지고 달러값이 떨어지니 유가가 또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얘기다. 국내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는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가격이 하반기에는 최고 135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의 상승만으로 이렇게 고통이 큰데 더 오른다면 어떻게 버텨야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유가의 충격은 실물에 이어 금융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나라 밖에서는 지난 3월부터 장기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다.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배경은 다르지만 국내은행 금리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금리는 최고 연 8.5%까지 뛰었다. 한국은행이 경기둔화를 우려해 금리를 묶어두고 있어 이 정도지만 하반기에는 금리가 오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글로벌 주식시장도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씩 반등하고 있긴 하지만 대세는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고유가로 경기는 뒷걸음질하고 물가는 뛰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먹구름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달 올해 경제성장률을 1% 초반으로 수정했다. 1월 초 전망치보다 1%포인트 이상 낮춰 잡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압력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불씨가 언제 되살아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사정도 마찬가지다. 물가는 이미 한국은행의 관리목표를 벗어났다. 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하향조정되고 있다. 국제 투자은행들은 3%대로 낮춰 잡았다. 5월에는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무역수지도 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경제상황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물과 금융경제가 동시에 악화되면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소비와 생산ㆍ투자ㆍ성장은 둔화되고 실업자는 늘어난다. 공공요금까지 인상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보면 살인적인 고물가가 염려된다. 경기는 죽을 쑤고 금리는 치솟고 집값은 떨어질 게 뻔하다. 빚을 내 집을 사거나 주식투자에 나선 사람들은 낭패를 볼 수 있다. 정부가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정책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 기업과 가계가 앞으로 닥칠 한파에 적극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이든 가계든 불황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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