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30일] 콕시스 아미


1894년 4월30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군병력이 주변을 에워쌌다. 시위 때문이다. 시위대는 한달 이상을 걷고 걸어 수도로 올라온 농민과 실직자. 1893년 발생한 불황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락하고 기업이 문을 닫자 대통령과 의회를 찾아가면 대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출발지인 오하이오에서 100여명이었던 인원은 도시를 통과할 때마다 불어났다. 주동자 제이콥 콕시의 이름을 따 ‘콕시스 아미(Coxey’s Army)’로 불렸던 행렬은 한때 4,000여명이 넘었지만 워싱턴에 도착한 인원은 약 500여명. 의사당 앞에서 이들은 공공투자 확대와 은화 자유주조를 통한 인플레이션 정책을 요구했다. 통화 공급이 늘면 물가와 농산품 가격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순박한 꿈은 경찰과 군의 말발굽에 밟혔다. 주모자들은 감옥에 갇혔다. 시위대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두 가지 흔적을 남겼다. 첫째는 1867년 미국 대통령 선거. 현대적 지역순회 유세가 처음 동원된 선거이자 세계 정치사상 유일하게 통화제도와 금본위제도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된 선거다. 콕시스 아미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두번째 흔적은 ‘오즈의 마법사’. 1900년 출간된 이 책은 저자 프랭크 바움이 콕시스 아미를 동행 취재하는 과정에서 구상됐다고 전해진다. 작품 속에서 마법의 도시 오즈(OZ)은 시위대의 행선지인 워싱턴과 무게 단위가 온스인 금을 상징한다. 소녀 주인공 도로시는 현명한 미국인, 허수아비는 농부, 양철인간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캐릭터. 동화가 아니라 정교한 경제풍자 소설인 셈이다. 콕시스 아미는 시대의 등불이었는지도 모른다. 불황 속에서 자신은 소멸되면서도 정치구조를 바꾸고 역사에 길이 남을 문학 작품을 잉태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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