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은 가난에 찌들었던 우리나라가 새로운 발전의 길로 들어서게 된 초석이었습니다."
2010 한ㆍ아프리카(KOAFEC) 장관급 경제협력회의 첫 날인 15일 아프리카 각국 공무원들의 눈길은 새마을운동을 소개하는 세션발표에 쏠렸다. 세계에서 가장 못 살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시골 마을 구석구석을 개발했는지 그 노하우에 관심이 모아진 것.
'한국의 농촌개발 및 새마을운동'이라는 주제발표에 나선 박성제 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우리 농촌의 생산력이 얼마나 향상됐는지를 소개했다. 1990년을 100으로 봤을 때, 1970년 4에 그쳤던 우리 농촌의 생산력이 지난 2008년에는 189로 40년만에 무려 27개 높아진 것. 10아르(a) 당 쌀 생산량은 1970년 330kg에서 2008년 520kg으로 증가했고 옥수수 생산량이 145kg(1970년)→505kg(2008년)으로 높아졌다고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박 부원장은 이 같은 우리 농촌의 발전 원동력으로 녹색혁명과 새마을운동을 꼽았다. 그는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기치 하에 정부 주도로 농촌의 소득과 인프라, 생활환경, 공동체 재건을 목표로 했다"며 "당시 대통령이 직접 농촌 구석구석을 방문해 새마을운동 현장을 점검하는 등 국가적 관심을 쏟았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마을회관 건설 및 도로포장 현장, 콩고민주공화국의 벽돌집 건설 현장 등 새마을 운동이 개발도상국 곳곳에 수출된 모습도 아프리카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날 회의에서는 한국의 교육 및 과학 발전의 경험도 함께 소개됐다. 1960년대 텅스텐수출국이었던 나라가 조선, 반도체, 휴대폰 세계 1등 국가가 된 배경에는 1963년 400만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국내 총연구개발비(GERD)가 2008년 312억8,800만달러로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그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설립되고 1967년 과학기술부가 설립돼 국가 주도로 과학기술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발표에 나선 최영락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엔지니어를 키우고 발달된 기술습득, 꾸준한 교육시스템 개혁 등으로 높은 수준의 맨파워를 일궈냈다"며 "기술개발을 장기계획으로 추진하고 혁신을 위해 R&D 인프라를 고도화했던 것도 기술강국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