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형 IB가 살길이다] <1부-1> IB 덩치 제대로 키워라

글로벌 IB 시장잠식·열악한 자기자본등 걸림돌 많아<br>자금력·해외 네트워크 갖춘 은행권과 결합 바람직

요즘 증권사들의 모습이 ‘백조’ 같다. 물위의 평온한 모습과 달리 물 아래에서는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라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이 불과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무한경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의 전통적인 증권 위탁매매만으로는 내일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증권사들은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가장 많은 증권사들이 앞 다투어 뛰어드는 분야가 주식인수나 인수합병(M&A) 등을 포함한 투자은행(IB) 업무다. 증권사의 새 최고경영자(CEO)들도 신성장 동력으로 주저 없이 IB를 외치며 오로지 살길은 ‘골드만삭스로 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말 골드만삭스가 정답일까. 그리고 그게 가능할까. 국내 IB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글로벌 IB들의 굳건한 시장 장악과 중소형 증권 플레이어들의 잇따른 등장, 열악한 자기자본 규모, 영업경쟁 심화 등 여기저기에 걸림돌 투성이다. 따라서 현재 국내외 IB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글로벌화된 ‘공룡 IB’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효율적인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냥 덩치만 키우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한국형 대형 IB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IB들 국내 시장에서‘식사 중’=증권업계에 대기업의 진출과 신규 증권사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올해 현대차(HMC증권)와 현대중공업(CJ투자증권)이 증권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기에 지난달 말 IBK투자증권ㆍSC제일투자증권 등 8개의 신설 증권사까지 영업에 가세해 국내 증권사 수는 54개에서 62개로 늘어났다. 현재 국내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증권 위탁매매에 대한 의존도가 전체 수익의 70%에 육박하는 것을 감안할 때 보다 많은 플레이어의 등장은 경쟁심화를 예고한다. 따라서 부가가치가 큰 IB 부문 강화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들의 IB 경쟁력은 열악하다. 골드만삭스ㆍ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IB에 비하면 덩치와 경험ㆍ노하우 등에서 격차가 크다. 해외는 제쳐 두고서라도 국내 IB시장에서 대규모 M&A 등 돈이 될 만한 대어들은 대부분 외국계의 몫이다. 지난해 국내 M&A 거래 규모는 총 738억달러로 전년에 비해 78%나 급증했다. 하지만 국내 M&A 재무 자문기업 실적을 보면 씨티ㆍUBSㆍHSBCㆍ골드만삭스 등이 상위권을 휩쓸었고 그나마 우리투자증권이 국내사로는 유일하게 10위에 올랐다. 이처럼 국내 증권사들이 안방을 모두 내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IB 경쟁력의 절대적 잣대로 일컬어지는 자기자본 규모를 포함한 ‘규모의 영세성’ 때문이다. 이건표 대우증권 IB사업단장은 “IB는 기본적으로 리스크가 큰 아이템을 통해 그만큼의 높은 수익을 창출해내는 사업”이라며 “풍부한 자본의 유동성을 갖고 있느냐가 IB의 성패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기자본, IB 인력 강화가 ‘열쇠’=국내 증권사들도 IB 강화를 위해 자기자본 확대에 나서고 있으나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증권사 중 자기자본이 2조원을 넘는 증권사는 대우증권(2조4,400억원), 우리투자증권(2조4,400억원), 현대증권(2조2,800억원), 삼성증권(2조3,100억원), 한국투자증권(2조2,300억원) 등 5개사뿐이다. 이는 세계적 IB들의 자기자본 규모가 평균 25조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10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IB에 있어서 자기자본 규모는 결정적 요소다. 수조원대의 M&A를 비롯해 대규모 자기자본투자(PI)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는 리스크가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반드시 이를 지지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국내 증권사의 IB 인력 확충도 눈에 띈다.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48주년을 맞아 조사한 결과 국내 주요 15개 증권사의 IB 인력은 2,000명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말 1,700명에서 7개월여 만에 17%가량 증가한 수치다. 인력 규모면에서 대우증권이 310명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증권(268명), 동양종금증권(197명), 우리투자증권(150명), 한국투자증권(147명)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상당수 증권사들이 오는 2010년께 IB 인력을 지금보다 2배가량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해외 글로벌 IB에 편입돼 있는 국내의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는 것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의 관계자는 “국내의 금융인재들이 해외 IB에 진출해 있는 경우도 많다”며 “국내 인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높은 인센티브와 인프라 확충 등을 전제로 인재를 끌어오는 것도 병행돼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증권+은행’으로 덩치를 키워라=국내 증권사들이 자기자본과 인력확충에 힘쓰고는 있지만 단기간에 국내에 대형 IB를 내놓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은 역시 대형 M&A라는 지적이다. 특히 업무영역이 겹칠 수밖에 없는 단순한 중소형 규모의 증권사 간 결합이 아닌 자금력과 해외 네트워크가 풍부한 은행권과의 결합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우증권과 산업은행 IB 분야의 결합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해 하나은행과 하나대투증권의 IB 부문을 따로 떼내 만들어진 하나IB증권도 좋은 사례다. 더불어 일부 증권사와 은행권의 전략적 IB 제휴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은행이 올해 안에 대형 증권사에 대한 M&A를 통해 IB 부문을 크게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최근 신설된 증권사들의 경우 상당수가 은행과 보험업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지만 규모는 중소형급에 불과하다. 따라서 은행과 증권이 결합한다고 하더라도 대형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또 하나의 ‘구멍가게’를 생산해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는 곧 ‘나눠먹기’ 식으로 흐르면서 결국 대형화를 추구하는 국내 IB 전략에 또 하나의 방해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신보성 한국증권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은 “위탁매매에 치중할 경우에는 증권사의 덩치가 굳이 클 필요가 없지만 IB를 추구한다면 상황은 다르다”며 “국내 IB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증권사 간 소규모 M&A가 아닌 은행과 증권사의 적극적인 결합에 따른 대형화가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한영일ㆍ최수문ㆍ정영현ㆍ이혜진ㆍ이상훈ㆍ박해욱ㆍ유병온ㆍ황정수기자 hanu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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