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독일의 구텐베르그 인쇄술은 지배계층의 소유였던 활자를 대중에게 되돌려줘 종교혁명을 일으킨 근본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역사적으로 학문은 지배층이 정보를 독점하는 수단이었다. 때문에 이를 다루는 문인들은 지배층과의 불화로 천수를 누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사기(史記)를 기록한 역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은 한 무제 2년(BC 99)에 이릉(李陵) 장군이 흉노에 항복한 일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을 당했으며, 명말 청초의 유명한 문인이었던 김성탄(金聖嘆)은 독특한 견해로 주역을 해석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다 1648년 역적으로 몰려 목이 잘렸다. 중국의 사학자이자 소설가인 리궈원(李國文)은 중국 역사에서 문장으로는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자신에게 되래 칼이 돼 돌아온 중국 최고의 문인 36명의 비극적인 삶을 소개한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저자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단편소설 '재선거'를 써 저자는 문화혁명 당시 우파로 낙인찍혀 20여년간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의 뼈저린 경험은 중국 역사에서 문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필화(筆禍) 사건에 관심을 두게 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기괴하고 참혹하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학자들의 죽음을 통해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의 가식과 허상, 자긍과 오만의 실상을 드러낸다.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은 학문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어두운 그림지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붓을 놀리는 자가 제 분수를 모르고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면 바로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세속의 밥을 구하고, 정치와 권력에 발을 담가 그 속에서 이권을 얻고자 한다면 귄좌의 귀하신 몸은 물론 그 주변의 밥상아래 웅크리고 있는 하룻강아지 조차 사납게 짖어댈 것이다." 책은 사마천ㆍ이태백ㆍ소동파 등 스스로 브랜드가 된 중국 최고의 작가들에서부터 서위(徐渭)ㆍ이지(李贄) 등 광인(狂人)으로 평가 받은 문인들 그리고 진자룡(陳子龍), 하완순(夏完淳) 등 지식인으로는 드물게 뜨거운 삶을 살다 간 혁명가 등 2500년 중국 역사속 문인들의 비정상적인 최후를 두루 다뤘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해 치욕적인 죽음을 맞는 불세출의 문인들이 느꼈던 심리적인 측면까지 묘사해 현장감을 더했다. 저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지식인을 제압했던 권력자들을 비판하지만, 권력에 아첨하며 본분을 망각한 문인들의 기만을 꼬집는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저자는 인물들의 비극적 최후를 통해 권력에 고개 숙이거나, 이에 편승해 타락하거나 혹은 자신의 총명함을 자랑하려 세치 혀를 함부로 놀리는 등 문인이 본분을 망각한다면 천수를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