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열풍'은 IT강국을 자처하던 우리나라에 적지않은 생채기를 남겼다. 세계 2, 3위 휴대폰 제조사를 앞세운 한국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 아이폰에 이렇다 할 힘도 써보지 못하고 체면을 구긴 것이다. 아이폰은 국내 통신시장의 화두로 부상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국산 휴대폰의 경쟁력을 우려하는 자성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세계적 투자은행 겸 시장조사 업체인 크레디트스위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경쟁력을 7대 부문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애플이 10점 만점에 평점 7.9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브랜드 부문에서 각각 9점, 제품 포트폴리오와 유통 및 공급망 부문에서 8점을 획득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유통 및 공급망(7점), 브랜드(8점), 자재원가 효율성(6점) 등에서 우위를 보였으나 평균 4.7점의 평점으로 7위에 머물렀다. 보고서에서는 삼성전자가 뒤늦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소프트웨어 전략이 없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LG전자는 소프트웨어ㆍ서비스ㆍ제품 포트폴리오에서 전반적인 열세를 보이며 평점 3.8점을 획득, 주요 스마트폰 업체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국산 스마트폰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1980년대 아날로그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국내 통신시장은 철저히 대기업 중심의 '월드가든(Walled Garden)' 형태를 유지해왔다. 콘텐츠 개발자가 시장에 진입하고 성공하려면 필사의 노력을 해야 했다. 설사 제도권에 들어가더라도 과실은 고스란히 통신사와 제조사의 몫으로 돌아갔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부정적 인식 역시 국산 콘텐츠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아이폰 충격'은 단순히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수직계열화식 비즈니스 모델과 미국형 수평 네트워크 비즈니스 모델의 충돌"이라고 지적한다. 소프트웨어 파워가 강조되는 스마트폰 시대에 과거의 행태를 답습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설명이다.
애플의 성공은 국내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에 콘텐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하드웨어 사양 경쟁이나 폐쇄적 모바일 생태계로는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국내 업체들은 뒤늦게 콘텐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 등이 저마다 대규모 콘텐츠 투자계획을 밝히며 '개발자 끌어안기'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현재진행형이다.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단기간에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육성책도 중요하지만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 교수는 "닌텐도ㆍ구글ㆍ애플이 성공한 것은 서드파티(협력업체)인 독립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수평적 네트워크를 연결한 후 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했기 때문"이라며 "건전한 수평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왜곡된 소프트웨어 시장 구조를 바로잡는 한편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국민적인 인식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