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8월 20일] 정치도구 전락한 '피의사실공표죄'

과거 10년간 피의사실공표죄와 관련해 검찰에 고소•고발된 사건은 202건이다. 하지만 검찰이 이 죄목을 적용해 기소한 경우는 0건이다.

지난 3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피의사실공표죄가 도마 위에 오르자 "피의사실공표죄의 구성요건이 굉장히 까다롭다"고 답변한 적이 있다. 야당 의원들은 이 장관의 이 답변을 놓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며 직무유기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들 두고 세간에서는 정치권이 피의사실공표죄를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필요할 때면 꺼내 드는 '정치공세'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정치권은 유력인사의 형사피의 사실이 알려질 때면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며 형사처벌과 손해배상을 요구하곤 했다. 야당의 경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검찰 수사 당시 정치전략에 따라 피의사실이 의도적으로 언론에 알려졌다며 법무부와 검찰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정작 야당이 제기한 형사고소 사건은 '무혐의종결' 처리됐고 민사소송은 '증거불충분'으로 기각판결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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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정치권과 검찰의 입장이 뒤바뀌는 묘한 사태가 벌어졌다. 국회가 피의사실공표죄를 무시하고 청문회에 피의사실을 알리라며 증인으로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을 채택하자 검찰에서 이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에 노 지검장을 '민간인 사찰' 관련 증인으로 채택하자 검찰은 피의사실공표죄 위반이라며 '청문회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검찰이 피의사실공표죄 항목을 방패로 삼아 '공무원은 직무상 비밀을 이유로 증언을 거부할 수 없다'는 '국회증언에 관한 법률'을 피해나가려는 의도인 셈이다.

최근 기자는 한 형사담당 판사가 "피의사실공표죄의 경우 관련사건을 맡아본 적이 없어 어떻게 적용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형사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할 현행법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데 이어 점점 사(死)법이 돼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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