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노동운동의 틀 바꿔라] 덩치·권한 커진 노조 견제장치가 없다

단위노조 상급단체도 산하조직 부정 대처못해<br>여론 수용 채널 마련 자율 감시기능 살려야


지난 1987년까지 군사정권은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동부가 노조의 경리상황을 조사하거나 필요한 서류를 검사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 조항은 노조 간부들의 노조비 횡령이나 전횡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허용됐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효과적인 노조 탄압수단으로 악용됐다. 그러나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정부의 권한은 ‘조사 가능’으로 축소됐고 97년부터는 ‘운영상황 보고’로 완화돼 노조에 대한 외부 견제 수단은 사실상 사라졌다. 노동운동은 한국 사회 민주화에 주요역할을 담당하고 그릇된 기득권을 혁파하는 등 사회변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노조는 커진 권한과 덩치에 걸맞는 내부 감시나 비리에 대한 견제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 외적인 견제와 감시에서 벗어난 만큼 노조 스스로 자율적인 감시 시스템을 만들고 비리 행위자에 대한 ‘일벌백계’식 대응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근로자 복지기금 40억원 투자 대가로 5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 노사정대표자회의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동자를 ‘대변’해온 권씨지만 노조간부 지위를 남용한 그의 비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권씨는 지난 96년 부산택시노조 위원장 시절 조합원 1만7,000여명의 작업복을 주문 제작하면서 업주에게 7,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된 뒤 97년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권 씨는 출소 후에도 98년 부산택시노조복지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복지회관 건립부지를 시가보다 3배나 비싸게 수의계약, 배임 혐의로 고발당해 검찰 수배를 받았다. 그는 수배도중 전국택시노련 위원장에 당선됐고 결국 무혐의 처리 됐다. 권씨는 서울로 올라와 3번이나 전택노련 위원장에 선출됐고 한국노총의 2인자인 사무총장까지 승승장구했지만 결국 노조의 위신을 추락시킨 장본인으로 전락했다. 지난 1월 검찰 수사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간부들의 취업비리 사건. 그러나 기아차 노조 집행부는 검찰 수수 수개월 전부터 비리 사실을 인지했지만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집행부 총사퇴와 노조간부 줄구속의 비운을 겪었다. 기아차 노조 대의원들은 지난해 9월부터 광주공장의 취업비리에 대해 노조 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 지난해 12월과 올 1월 대의원대회에서 격론 끝에 ‘광주공장 입사 관련 진상규명 및 대책수립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내부 토론으로 시간을 보내다 자체 정화 기회를 놓치고 결국 검찰의 철퇴를 맞았다. 상급단체인 금속산업연맹과 민주노총은 검찰 수사 이전에 산하 조직의 부정에 대해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기아차 노조 사태는 노조 내부의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데다 단위 노조의 상급단체마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노총은 비리 전력자를 고위간부로 추대했다 된 서리를 맞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노조 예산운용 관련 부정이나 횡령 등으로 노조집행부의 불신임이나 자진사퇴, 조직유지의 어려움 등을 경험한 노조가 전체 노조 8곳 가운데 1곳 꼴인 13.0%에 달했다. 특히 500인 이상 대기업 노조의 경우 13.8%가 불미스런 경험을 해 500인 미만 기업의 11.9%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조간부들의 비리는 부분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구조적이고 누적된 비리”라며 “특히 사용자와 연계된 노조의 부정부패는 은밀한 거래의 특성상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 위원은 “노조 스스로 시민단체와 여론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 외부 비판과 주문에 귀를 기울려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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