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IT '미래의 20년' 준비할 때"

'유비쿼터스 전도사' 김창곤 한국전산원장

김창곤 한국전산원장

“대한민국 IT산업의 현재는 20년 전 정부나 기업인들이 막연하게 그려왔던 꿈의 결과물들입니다. 20년 후의 미래도 지금의 준비와 꿈에서 나올 것입니다. 20년 전 우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 미래 20년을 준비하고 그려야 됩니다.” 김창곤(57ㆍ사진) 한국전산원장이 각종 강연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한국IT산업이 걸어온 길과 미래 한국사회가 준비해야 될 과제들을 짚어내고 있다. 자칭, 타칭 ‘유비쿼터스 전도사’로 불리는 배경이 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설득력을 갖는 것은 화려한 경력 때문. 지난 68년 정보통신부의 전신인 체신부 9급 기술공무원으로 시작해 지난해 1월 정보통신부 차관으로 퇴임하기까지 무려 37년간 ‘정보통신’이라는 한우물을 파왔다. 76년에는 아예 기술고시에 합격해 5급 사무관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고교 졸업 직후 학비가 없어 급하게 체신부에 들어갔는데 그 후 공부에 욕심이 났다”는 게 고시를 준비하고 전자공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배경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김 원장이 기억하는 초창기 한국IT산업은 빈약했다. “80년대 망우리에 살던 내 집(일반주택) 값이 300만원이었는데 당시 백색전화가 250만원에 거래됐다”고 했다. 또 “88년 국가대사였던 서울올림픽 당시 국내휴대폰 보급대수는 불과 2만대, 그것도 모두가 미제 모토로라 휴대폰이었고 국산차 포니보다 비쌌다”고 기억했다. “가입수수료와 가입채권값 약 116만원, 모토로라 단말기 가격 약 300만원을 더해 총 416만원이 들어갔는데 당시 포니값은 400만원 정도였다”는 것. 그는 그런 한국IT산업의 성공요인을 ▦선각자 ▦정보통신부 신설을 통한 전략 분야의 선택과 집중 ▦우수한 국민성을 들었다. “94년 12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승격해 독립된 정부부처로 출범시킨 선각자들의 탁견이 컸다. 일본은 우정성을 우리나라 행정자치부에 해당하는 총무성에 통합했는데 이것이 두 나라 IT산업 경쟁력의 향배를 갈랐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은 이후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 초고속정보통신망, CDMA 기술 등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김 원장은 “대한민국은 최근 또다시 ‘불확실성의 시대’에 노출돼 있다”며 좀더 섬세하게 세상의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남대문시장의 하루평균 방문객 숫자가 40만명인 반면 인터넷장터인 옥션의 하루 방문객은 137만명에 달하고 지난해 말 기준 교보문고 1년 매출이 949억원인데 반해 인터넷서점인 YES24 매출액은 1,430억원에 달한다”며 IT에 기반한 생활변화를 설명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선각자. 82년 체신부에 통신정책국이 신설됐는데 그때 간부들은 미래 정보사회를 주제로 수시로 특강과 세미나를 해가며 미래사회를 그리면서 대비책을 논의했고 그게 지금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래사회는 “내 몸이나 교량, 자동차배기통, 동물의 몸 등에 전자칩이 들어가는 유비쿼터스 사회”라고 분명한 진단을 내리고 “20년 전에 우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미래 20년을 준비해야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