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부 주도 합병 추진에 은행들 냉담

정부 주도 합병 추진에 은행들 냉담 [2차 금융빅뱅 이것이 변수다] (2) 정부는 힘이 없다 고위 당국자들이 올들어 수도없이 우량은행간 합병을 공언해 왔지만, 말이 먹힌 흔적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1차 빅뱅이 단행된 지난 98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 은행들은 사상 처음으로 존폐의 위기감 속에서 정부가 조금만 겁을 줘도 쉽게 따라왔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우량은행들은 생각이 달라졌다. 정부에 이끌려 합병을 단행했던 보람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과정을 목격했기 때문. 과연 그 두은행이 합병을 안했으면 퇴출이 불가피했는지, 결과적으로 합병이 주주와 종사자들의 이해를 충족시켰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은행들은 냉정해졌다. 쉽게 겁먹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합병의 형태와 시기를 아무리 떠들어도 그야말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시장이 보다 원론에 충실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각 은행의 대주주들이 키를 쥐고 있다. ◇은행합병은 장관들의 말잔치(?)= 진념 재경부장관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그동안 10월안에 은행합병이 가시화 될 것이라고, 또는 합병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은행합병의 시기와 형태가 당국자의 입으로 '공개'된 전례가 없다. 아무리 구조조정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그건 상식이 아니다. 금융구조조정의 시기와 성과를 미리 알려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쯤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장관들은 식언을 한 셈이 됐다.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의문이다. 스트레스는 은행장들만 받는다. 고위관료가 언론을 의식해 한마디 할 때면, 이미 은행장들에게는 열마디의 압력이 전달됐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은행장이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합병에 적극 나서라는 주문을 받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이냐"고 답답한 사정을 호소했다. ◇대주주가 합병 좌우한다= 우량은행들은 모두 외국계자본이 영향력 있는 대주주로 참여해 있다. 은행측은 합병과 관련한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관되게 "대주주의 뜻에 반하는 합병은 선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실제로 대주주를 거스를 수 있는 은행은 없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말 지주회사 설립사무국 설립을 공식 발표하면서 합병대열에서 확실하게 이탈했다. 정부는 이인호 신한은행장 등을 통해 마지막까지 '합병 동참'을 부탁했지만, 결국 신한은행 대주주인 재일교포는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국민은행의 대주주인 골드만삭스도 부실은행과의 합병은 결코 용인할 없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 골드만삭스 뿐 아니라 하나은행의 대주주인 알리안츠나 주택은행의 대주주인 ING그룹 역시 다른 외국인주주들의 우호적인 지분을 감안하면 원하지 않는 합병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우량은행도 속속 대열이탈= 공자금을 받았거나 경영개선작업에 나선 비우량은행들도 다를 바 없다. 정부가 대주주라면 끌려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영향력 있는 대주주가 있다면 상황은 다르다. 만일 코메르츠라는 든든한 대주주가 없었다면 과연 외환은행이 '독자생존'판정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한국노총이라는 막강한 세력이 뒤를 받치고 있는 평화은행도 심심찮게 정부방침에 반기를 들고 있다. 평화은행은 이번에 공자금을 투입받고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되는 상황이지만 "가능한 한 빨리 공자금을 상환해 지주회사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광주ㆍ제주등 경영개선계획에 대해 '불승인'판정을 받은 지방은행들도 정부구상을 온건하게 수용하려하지 않는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금융구조조정의 정형화 된 '틀'은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상당수 은행들은 이미 정부 '가이드라인'밖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달래고 때로 겁을 줘 정책의지를 관철시키려 하지만 뜻대로 될 지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성화용기자 이진우기자 입력시간 2000/11/12 17:20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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