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갈등 봉합돼도 개혁원칙 흠집 불가피

갈등 봉합돼도 개혁원칙 흠집 불가피정부, 예금보장제등 부분양보로 추진력 약화 노·정간 협상이 17시간의 숨막히는 고개넘기식 협상 끝에 타결에 임박했다. 비록 밤샘협상 실패 속에 노측의 한시파업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노·정간 의견접근은 2차 금융개혁의 주체인 두 축이 개혁추진 과정에서의 갈등을 조기 봉합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데 일단 긍정적인 측면을 지닌다. 특히 노측은 수십년간 악습처럼 인식됐던 관치금융의 폐해를 공식화시키는 동시에 추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정 지분을 갖고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금융개혁 추진과정에서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일정 속도 숨고르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됐고, 이는 개혁일정에 손상이 불가피한 「상처입은 영광」으로 남게 됐다. ◇상처입은 정부, 개혁의 속도 숨고르기=정부는 노·정간 협상을 통해 2차 금융개혁의 핵심 포인트를 노측에 양보했다. 우선 시장 중심의 핵심 구조조정 원칙이었던 예금보장제도에 대해 탄력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시장 상황과 은행별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 금융지주회사도 마찬가지. 정부와 금융노조는 이번 합의안에는 금융지주회사의 유보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측은 그러나 협상 내내 야당인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지주회사의 도입 유보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로서는 구조조정 일정이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훼손됐다는 명분을 얻게 된 셈. 일부에서는 6월 임시국회로 예정돼 있던 지주회사법 제정시기가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갈 공산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주회사를 통해 강제로 합병하지 않겠으며 인원감축도 노조와의 사전합의를 거친다는 약속도 했다. 결국 내년 예금보장제 시행을 앞두고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포함한 부실은행의 뱅크런에 대비, 지주회사를 핵우산으로 삼겠다던 정부의 구조조정 일정 및 이를 통한 추진력은 적지 않은 손상이 불가피하게 됐다. 물론 정부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지주회사를 도입하더라도 어차피 은행별 자구노력의 시간을 줄 방침이었고 실제 통합과정은 내년 1월로 예상했기 때문에 개혁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예금보장제도 또한 보호한도를 일정부분 상향조정하고 은행별 자율에 맡긴다 해도 보호한도에 따라 시장이 자연스럽게 은행간 우열을 판가름할 것이라는 게산이다. 공적자금 투입은행간 강제적인 통합을 하지 않더라도 예금보호 축소를 앞두고 결국엔 시장의 냉엄한 판단에 따라 은행 스스로 「핵우산」 속에 들어올 것으로 자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역으로 앞으로 정부 정책이 강제적 구조조정 대신 시장에 의한 자연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정책적 기반을 강화해나가는 쪽으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한다. ◇노조, 개혁추진의 한축으로 등장=노조는 이번 협상의 최대 수확으로 과거 수십년 동안 정부에 일방적으로 이끌려왔던 구조개혁의 추진축에 은행(원)을 포함시킨 점을 들고 있다. 지주회사 제정과정 및 추진과정에 노조의 지분(힘)을 행사할 수 있게 했고, 특히 인력조정 등을 정부 임의로 할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과거 시장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정부가 은행을 무조건적 희생양으로 삼아왔던 것을 일정 부분 단절시킬 수 있는 기반도 구축했다. 은행장들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러시아 경협차관 보증분이나 종금사 예금대지급분을 조기(연내)에 해소하도록 한 것은 의미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무조건적 수직적 관계를 형성하게 했던 근본원인, 즉 「관치금융」을 희석시킬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한 것은 비단 노조의 위치확보뿐 아니라 국내 금융사에서도 흔적을 남길 만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2차 금융개혁 새로운 전환기=노·정간 협상은 한시파업이라는 흠집을 남겼으며 노·정 서로간의 적절한 타협을 통해 갈등을 봉합했다. 정부로서는 7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하려던 구조조정 일정에 다소의 차질이 불가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에금보장제도를 통한 엄격한 시장판단에도 다소의 흠집이 가해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구조조정의 원칙이 완전 훼손됐다고 보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정부는 연내 2차 금융개혁의 기본 틀은 갖추겠다는 각오다. 협상과정에서 볼 수 있었듯 은행간 우열화는 하반기로 접어들수록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이번 파업이 정부가 추구해왔던 시장중심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비록 지주회사와 예금보장제 등 2차 개혁의 핵심 축에서 다소 밀린 듯한 인상을 줬다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면서도 『이번 기회를 계기로 금융기관 스스로 시장을 버리면 스스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점은 중요한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한 연구위원도 『한동안 미뤄졌던 투신 등 2금융권의 구조조정도 연내에 가시적 결과를 가져오도록 강도 높은 추진력을 새삼 가다듬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 입력시간 2000/07/11 17:12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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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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