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9월 11일] '김정일 뇌수술'과 한반도 정세
고유환(동국대 교수ㆍ북한학)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유포되는 가운데 북한 정권수립 60주년을 맞은 지난 '9·9절' 행사에 김 위원장이 나오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뇌 수술을 받은 뒤 현재 회복 단계"라는 국정원 관계자의 발언까지 나왔다. 김 위원장이 뇌 수술을 받는 등 중병이 '기정사실화'돼가는 분위기다. 사실 여부는 좀 더 지켜보면 확인될 것이다.
중병 가능성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김 위원장 은둔의 배경은 최근의 북미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핵 해결의 중대 기로에서 북한과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임기 막바지에 이르러 지금까지 협상을 결산하는 중요한 담판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북한은 불능화 유보 카드를 내밀었고 미국은 다소 완화된 검증절차를 제안해놓은 상태다. 북한은 불능화 조치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교환해 경제재건을 본격화하느냐, 아니면 주변 국가와 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지속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핵 문제의 가닥을 잡고 경제를 재건해야 후계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중대 결정을 앞두고 건강에 이상이 생겼거나 칩거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한 김일성의 경우처럼 김 위원장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지금이 김정일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중병이 아니라면 김 위원장은 중대 결단을 위한 장고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정권수립 60주년 행사도 중요하지만 북미 핵 담판이 더 중요한 현안이다. 당 우위의 국가체제를 운영하는 북한에서는 정권수립 기념일보다는 당창건기념일이 더 비중 있는 날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지난 시기에도 김 위원장은 정세가 긴장되거나 중대 결정을 할 때 장기간 칩거한 전례가 있다.
북한은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이기 때문에 건강 이상설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중대 사태'임이 분명하다.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에 따라 북한의 대응은 달라질 것이다. 통치할 정도의 건강을 유지한다면 김 위원장은 후계를 서두를 것이다. 지금까지 준비해온 3-4세대 엘리트의 중심에 선정된 후계자를 앉혀 후계체제를 본격적으로 작동시키는 형태로 후계체제 구축을 서두를 것이다.
김 위원장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고가 생길 경우 북한 내부와 한반도 정세에는 큰 소용돌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의 유고와 동시에 북한이 붕괴되거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갑작스런 유고가 발생할 경우 우선은 김 위원장의 측근 친인척을 중심으로 한 과도적 리더십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선군정치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국방위원회가 우리의 비상계엄체제 운영과 비슷한 형태로 전면에 나서 치안유지 등 위기관리체제의 중심역할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군부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할 가능성도 있다. 야심가가 나타날 경우 북한 내부의 급격한 권력변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의 유고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작용하면서 한국 경제에 단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리더십이 출현해 개혁개방을 본격화한다면 남북경협이 확대되고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도적으로는 군부의 집단지도나 김 위원장 측근 인물들에 의한 위기관리체제가 운영되다가 개혁개방 지향적인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출현할 경우 북한체제의 변화도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김 위원장의 유고가 발생한다면 남북경협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기관리체제에서는 북한 역시 남한에 대한 경계심을 높일 수밖에 없고 남쪽 역시 비상대비계획들을 염두에 두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남북관계가 긴장될 수 있겠지만 일단 북한이 위기관리체제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출현시키게 될 경우 북한의 개방과 함께 대북경협도 더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 중병설과 관계 없이도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북핵 해결의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지금은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체제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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