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선택의 순간들] 삼성전자 반도체

"오일쇼크 극복 日저력은 반도체" 판단<br>74년 진출때 예상 깨고 메모리·D램에 승부수<br>후발주자 단점 "경쟁 또 경쟁" 병렬개발로 메워<br>日업체 웃도는 과감한 투자 LCD등 신시장 창출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 진출을 선언했던 1983년 어느날. 64K D램 개발팀에 ‘64Km 행군’에 참가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팀원들이 행군 도중 배를 채우기 위해 꺼낸 도시락에는 D램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가 담긴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당시 삼성의 선택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심정이었고, 그 비장함은 개발팀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윤진혁 삼성전자 부사장은 “아마 256K D램이었다면 265km를 행군했을 것”이라며 “64K D램부터 반도체 제품 하나하나의 개발과정이 전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4년 12월6일.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흥사업장에서 임직원들이지켜보는 가운데 벽보에 글자를 한자 한자 써내려갔다. 바로 ‘새로운 신화창조!!’였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선택한 것은 분명 모험이었다. 하지만 선택에 따른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연구ㆍ개발(R&D)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새로운 기술표준으로 이어졌고 결국 반도체 신화를 만들어냈다. ◇왜 반도체인가=1974년 12월. 유난히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이건희 회장(당시 중앙일보 이사)은 부친인 이병철 회장을 찾았다. 꼼꼼하게 사업을 검토하는 부친에게 이 회장은 “제가 개인적으로 해보겠습니다”라며 한국반도체 부천공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안팎의 시선은 싸늘했다. 당시 삼성물산 도쿄지점장이었던 이길현 경원 회장은 “그때만 해도 경제기획원ㆍ재무부ㆍ상공부 모두 투자과잉에다 기술자도 없다고 말렸고, 비서실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삼성은 왜 반도체를 선택했을까? 바로 오일쇼크를 견뎌낸 일본의 저력이 반도체 등 첨단 정보통신(IT)기술에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초기 반도체 시장에 진출할 때 일반의 예상을 깨고 메모리를 선택했다. 가전제품 등 내부 수요도 중요하지만 충분한 설계기술과 공정기술을 갖춰야 하는 주문형보다는 우수한 노동력이 밑천인 메모리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메모리가 일본ㆍ미국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한다는 점은 이 회장에게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발 나아가 이 회장은 당시 대세였던 S램 대신 양산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아래 D램에 승부수를 던졌다. 조남용 삼성전자 부사장은 “남들보다 늦은 만큼 한발 빠르게 양산해야 승부가 결정되는 D램은 삼성이 반도체사업에서 첫 숟가락을 뜨는데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경쟁하고 또 경쟁하라=삼성은 후발주자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병렬개발시스템’이란 독특한 연구개발 시스템을 가동했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추진하는 병렬개발시스템은 비용부담이 크지만 실패할 위험이 적고 시간도 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부 직원들의 경쟁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게 큰 강점이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일이 도면에 설계도를 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당시 256K D램 설계직원들의 무릎이 다 까질 정도였다”고 전했다. 병렬전략은 D램부문 세계 1위의 발판이 됐던 4M D램 개발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SSI(삼성전자 미국현지법인)는 칩의 아래를 파고 내려가는 트랜치 방식을, 국내에선 층을 쌓아가는 스택 방식으로 동시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개발4담당 이사였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IBM에 근무했던 나로서는 트랜치 찬성론자였다”며 “하지만 3개월만에 스택방식으로 4M D램 개발에 성공하자 이 회장은 주저 없이 스택방식을 선택했고 이는 결국 92년 삼성전자를 D램 판매 1위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과감한 투자로 신시장 창출=삼성 반도체사업의 최대 성공요인은 수많은 위험요인을 넘어선 지속적인 투자에 있다. 64K D램을 개발한 후 D램의 급격한 가격 하락으로 삼성은 한때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이 같은 상황은 256K D램 양산 초기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인텔조차도 D램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삼성은 오히려 설비투자를 늘리며 끝까지 버텼다. 실제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 가속을 붙였던 지난 88년부터 91년까지 D램에만 해마다 3억9,600만 달러씩 쏟아부었다. 이는 일본업체 중 투자규모가 가장 컸다는 도시바의 2.3배에 달하고 4대 일본 반도체 업체 평균의 2.8배에 이르고 있다. D램분야 세계 1등에 오른 이후인 93년부터 2003년에도 삼성전자는 일본 업체보다 4.7배나 많은 연평균 1억3,400만달러를 투자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보여준 과감하고 빠른 투자 결정이 메모리 1등의 원동력”이라며 “빠른 설비투자와 함께 진행된 한발 앞선 연구개발 투자도 삼성의 1등 신화를 진행형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성공은 이후 삼성에 수많은 신사업을 안겨주었다.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TFT-LCD나 애니콜 신화도 결국 반도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삼성은 미래를 한발 앞서 내다보고 반도체를 선택했고, 반도체는 인류생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바로 그 곳에 삼성전자는 반도체의 역사를 오늘도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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