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13개월만에 열린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0차 회의를 통해 작년 7월 이후 멈춰섰던 현안의 조기 이행에 합의하는 한편 남북경협의 새 동력까지 발굴해 내면서 경협의 폭을 한층 넓힐 수 있게 됐다.
또 지난 달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면담과, 제15차 장관급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이룬 데 이어 이번에 역대 경협위 사상 최다항목에 합의해, 경협을 업그레이드하고 한반도 화해무드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가장 눈에 띄는 합의는 기존 사업을 탄탄하게 이끌어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방식'의 경협을 추진키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는 북측이 기본발언에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경협사업을 새 방식으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번 협상테이블에 올랐다. 북측의 자원과 노동력, 남측의 자본과 기술 등 양쪽의 장점을 공유하자는 취지이다.
남북 경협에 대한 북측의 발상전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해석되지만, 다른한편으로는 경협의 확대발전을 위해서는 일방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형태로는 한계가있다는 인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새로운 방식의 첫 대상으로 소비재산업과 자원 개발을 연계시켰다.
내년부터 남측이 북측에 신발과 의류, 비누 등의 소비재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제공하고 북측은 남측에 아연과 마그네사이트, 인회석정광, 석탄 등 지하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를 보장하고 생산물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규사업으로 과학기술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남북과학기술실무협의회를구성, 운영키로 하는 한편 지난 달 장관급회담의 합의에 따라 수산협력실무협의회를발족시키고 첫 회의를 오는 25일 갖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한 합의이다.
과학기술협력의 대상으로는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황우석 교수가 대북 협력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데다 북측도 생명기술(BT) 분야를 집중육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줄기세포 분야가 우선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수산협력은 우선 대상으로 공동어로와 양식, 수산물 가공으로 잡았다.
공동어로는 서해상 긴장을 완화하고 공동의 이익을 낚아 올리는 동시에 제3국어선의 불법 어로를 차단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향후 군 당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장성급 군사회담이 재개될 경우군사적 긴장 완화 방안의 하나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사업 중에는 동해선ㆍ경의선 개통에 합의한 것이 눈에 띄는 성과다.
작년 말 완공돼 이미 차량이 개성-금강산 구간을 운행하고 있는 도로는 그동안미뤄놓았던 개통식을 10월에 갖기로 했고 현재 북측 구간의 역사 신개축이 한창인철도도 8월 노반 점검과 10월 시험운행을 거쳐 연내 개통키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 7월부터 시작된 남북 간 혈맥 잇기 작업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고 향후 물류 인프라로서 경협을 확대발전시키고 관광객과 양측을 오가는 경협인력 증가에도 보탬이 될 전망이다.
제6차 경협위 때부터 논의된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는 당초 우리측이 8월 중개설을 촉구했지만 9월 개성에 설치키로 최종 합의됐다.
이는 남북 경협을 놓고 발생하는 문제를 양측 당국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경협 활성화와 당국 간 인적교류에도 보탬이 될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상품 및 임가공 등의 거래를 직접거래 방식으로 확대할 수 있어 제3국 중개인을 통한 간접거래에서 오는 비용 증가 요인도 없앨 수 있게 된다.
개성공단의 경우 1단계 100만평 기반시설을 조속히 건설해 전력과 통신, 용수등을 보장하는 데 합의하고 우리측이 요구한 통행 간소화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호응했다는 점에서 1단계 본단지 중 5만평에 대한 분양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남북이 2002년 12월 이후 작년 5월까지 합의한 9개 경협 합의서가 8월 초 발효됨에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해운협력 등 경협의 안정성을 위한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2000년부터 논의가 시작돼 `장기 미제'에 해당하는 임진강 수해방지사업에서도빠른 시일 내에 양측의 단독조사 결과를 교환하고 8월 하순 공동조사에 들어가기로합의함에 따라 향후 홍수예보 체계를 갖출 수 있는 전망을 열었다.
특히 홍수 예방을 위해 묘목을 제공, 임진강 유역을 녹화하는 사업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경제시찰단을 11월 중 상호교환키로 함에 따라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 중인 북측의 시장경제 발전에 기여할 전망이다.
우리측이 대북 식량차관으로 쌀 50만t을 제공키로 선뜻 결정한 것은 최근 1인당하루 배급량이 200g까지 축소된 북측의 식량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지원될 쌀은 국내산 40만t, 외국산 10만t으로 구성됐고 t당 차관계약금액은 300달러로 수송비나 포장비까지 감안할 경우 총액이 1천500억원을 웃돌 것으로보인다.
그러나 이런 결과만 놓고 남북경협의 장래를 장밋빛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경협위는 첫 날인 9일 밤 북한의 이 달 말 6자회담 복귀 결정 발표로 조성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성과를 냈 듯이 그 추진 과정에서도 북핵 정국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