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은 이 바둑을 두던 2002년 11월부터 급격하게 하향세를 보였다. 체력의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해에 치른 대국 수효는 83국으로 한국의 프로기사 1백90명 가운데 가장 많았다. 58승 25패로 승률은 7할. 승률면에서는 톱텐이 들지 못했지만(11위) 다승 부문 3위로 그 해를 마감한다. 원래는 줄기차게 다승 1위를 달리다가 연말에 10대 기사들에게 추월당한 것이었다. 그해의 승률 톱텐 가운데 30세를 넘은 기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흑81이 천추의 한을 남긴 악수였다. 전광석화 같은 수읽기의 스피드를 자랑해온 그가 이런 범실을 범한 것은 누적된 피로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수로는 참고도의 흑1로 물러섰어야 했다. 백은 2 이하 12로 사는 수밖에 없는데 그때 흑13으로 붙였더라면 흑의 낙승이었다. 실전은 94로 귀의 백이 사는 수가 생겼다. 원래는 완벽한 흑의 땅이었던, 집이 나도 25집은 실히 났을 이곳이 백에게 넘어가게 되었으니…. 검토실에서 이 바둑의 진행을 지켜보던 서봉수가 탄식조로 말했다. “나이는 못 속여요. 나이 50에 최다 대국이라니. 과한 행마였지요.”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