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의 반 테러 전쟁이 아랍 민중의 민주적 권리를 압박하는 정권들을 온존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내용의 유엔 보고서가 나왔다.20일 발표된 유엔개발계획(UNDP)의 `2002 아랍 인간 개발 보고서`는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됐던 지난 1년간 아랍권 인권상황 등이 퇴보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26명의 아랍 지식인들이 참여해 작성한 이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군사ㆍ안보 정책 중심으로 선진국에서 채택된 뒤 아랍권으로 확산된 반 테러 정책은 인간개발에 적대적인 환경을 창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극단적인 이 정책이 미국 내 아랍인 및 이슬람교도의 권리를 위축시켜 지난 3년간 미국 내 아랍계 유학생 규모가 30% 가량 줄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아랍 세계에 민주주의를 수출, 이식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 테러 정책에 대해 “아랍 재편은 내부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반박, 아랍권 스스로 민주주의를 신장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만이 테러를 척결할 유일한 방도임을 강조했다.
특히 보고서는 현 아랍권 상황과 관련, 이스라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튀니지 레바논 팔레스타인에서 민간인들을 군사법정에 세우는 등의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제적인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아랍권에서 고문이 성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테러 방지를 위해 국가기구의 무제한적 권력 사용을 명문화한 `아랍 반 테러 선언`을 대표적인 인권 억압기제로 거명했다.
이 보고서는 또 2000년 9월부터 올 4월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2,405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 “희생자의 85%가 민간인이며 이중 20%는 어린이”라며 “이스라엘은 가공할 살인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아랍국 중 모로코와 바레인에서는 합법적인 선거가 실시돼 인권 상황이 다소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라크 국민들이 국제법에 따라 기본적 권리를 향유하고, 점령 상황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리마칼라프 훈나이디 UNDP 지역 사무소장이 작성자들의 신변안전 등을 우려, 예민한 문제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면서 보고서의 행간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랍권 지식 수준과 관련, 보고서는 아랍인 1,000명 당 18명만이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세계 평균은 인구 1,000명당 78.3대라면서 세계와 아랍권간의 지식 격차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