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꺾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부터 석달 동안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검사를 벌인 결과 대부분의 은행들이 꺾기를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적발된 곳은 국민ㆍ신한ㆍ하나ㆍ외환ㆍSC제일ㆍ씨티ㆍ광주은행 등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은행이 꺾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꺾기’란 은행이 대출해 주는 조건으로 다른 금융상품에 강제로 가입시키는 후진적이고 불공정한 관행을 말한다. 과거 금리가 싸고 돈 빌리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은행들이 수신고를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주로 쓰던 수법이다. 동북아금융허브를 지향한다는 나라에서 아직도 전근대적인 꺾기가 횡행하고 있다니 ‘선진금융’ ‘글로벌 뱅킹’은 한낱 구두선일 뿐이다.
대출해주고 펀드ㆍ보험 가입강요
꺾기는 은행이 우월적 지위인 ‘돈 줄’을 이용해 약자인 금융소비자의 팔을 비트는 불공정한 행위의 극치다. ‘꺾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과거 갖가지 편법이 동원되고 그 과정에서 검은 돈이 오가는 금융비리의 온상이 돼 왔었다는 점에서도 꺾기는 철저히 근절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꺾기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은행의 영업수준이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꺾기의 수단으로 종전에는 은행 예ㆍ적금이 주로 이용됐다. 그러나 요즘에는 주식형 펀드나 보험상품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펀드ㆍ보험의 끼워팔기로 인한 부작용과 폐해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소비자입장에서 보면 예ㆍ적금을 강제로 드는 데 따른 손실은 크지 않다. 적금의 경우 매월 부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몇 번 붓다 해약해도 원금은 회수할 수 있어 큰 손해는 없다.
하지만 펀드나 보험은 다르다. 펀드의 경우 은행 창구에 가면 수십종의 상품이 있다. 은행 직원들은 펀드 전문가가 아니어서 상품의 성격이나 수익률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시장상황이나 상품구성내용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인 게 바로 펀드다. 당장 대출이 아쉬워 울며겨자먹기로 펀드에 가입하지만 수익률이 떨어지면 고객들로서는 재산손실로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고 은행 직원과 옥신각신할 수도 있다.
보험꺾기의 폐해는 펀드보다 더 심각하다. 흔히 보험하면 대부분이 “머리 아프다”는 생각들을 한다. 보험구성내용이 복잡하고 보장도 천차만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판매는 전문성을 요구한다. 선진국들도 은행에서 보험을 판매하도록 하고 있지만 별도창구에 전문요원만이 판매하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상품내용을 정확히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꺾기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나중에 사고가 터지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 문제는 보험사와 설계사는 보험을 판 후 발생하는 소비자의 불만과 피해에 직접 책임을 지지만 은행원은 규정상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점이다. 심각한 일이지만 은행들은 별 관심이 없다.
내년 4월부터는 방카슈랑스 4단계가 시행돼 생보사의 종신보험, 손험사 상품도 은행이 판매한다. 또 내년부터는 통신사업의 재판매가 허용돼 은행들은 이통서비스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은행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고객님, 저희 은행이 판매하는 자동차보험을 한번 이용해 보시죠” “저희 은행이 서비스하는 이통사에 가입해 보시죠”라는 권유를 받게 될 것이다. 꺾기수단이 펀드ㆍ보험에 이어 이통사업까지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월적 지위 이용한 강매행위 근절돼야
산업 간 장벽이 무너지는 글로벌 시대에 은행이 수익확대를 위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익추구는 어디까지나 상호공존과 공생을 토대로 하는 것이어야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경제적 약자의 호주머니를 터는 일이어서는 곤란하다. 은행의 보험판매가 허용되면서 보험사들의 수지기반은 크게 약화됐고 은행종속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은행의 꺾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행위 자체가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금융산업 전반의 발전을 위해서도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은행들이 스스로 꺾기를 근절하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