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가 이천공장 투자계획을 대폭 축소하기로 한 것은 정부가 하이닉스의 수도권 투자계획에 대해 1차적으로 ‘불가’ 판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투자 살리기’를 강조했던 정부의 외침이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난 셈이다. 하이닉스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수도권과 지방간 갈등과 반목의 골도 깊어지게 됐다.
◇하이닉스, 왜 투자계획 축소했나=하이닉스가 이천공장 투자계획을 축소하기로 한 것은 1차적으로 정부가 당초 투자에 대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이천공장 증설계획을 완전히 무산시킬 수는 없어 대안을 찾다 투자축소를 검토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하이닉스가 구리공정을 배제해 공장을 세우면 이천이 상수원 보호구역 및 자연보전권역인 것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부는 환경 부문에 쉽사리 예외를 둘 생각이 없다. 아울러 이천 외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청주공장 증설은 하이닉스로서는 완전히 별도 문제다. 청주는 수도권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하이닉스가 정부에 투자계획을 제출할 필요도 없다. 단지 일부 환경 문제 등에 대한 협의만 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천공장 증설이 경쟁력 강화에 발등의 불이 된 하이닉스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정책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일부 부지에 제한된 증설을 하기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투자계획을 줄여 일단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정권이 바뀌면 추가 투자를 시도하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하이닉스는 당초 제출한 투자계획에서 오는 2010년까지 13조5,000억원을 투입해 7만5,000평의 부지에 300㎜ 웨이퍼 공장 3동을 건설할 예정이었지만 올해 투자분은 4조~5조원 정도며 나머지는 2008~2010년 투입될 부분이었다.
◇소신 없는 정부, 국민분열만 조장=정부는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여부에 대한 기본입장을 지난해 말까지 확정짓기로 했다. 그러다 이를 번복해 1월 중순으로 연기했고 12일 다시 기약도 없이 “가능한 빨리 추가 검토를 완료하겠다”며 또 연기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말 1차 연기 사실을 밝히면서 “더는 미루지 않겠다”며 “반도체 투자는 빠른 의사결정이 생명”이라고 했듯 정부의 무책임 행정의 최대 피해자는 하이닉스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정부가 무서워 어디 하소연할 것도 없다”고 호소했다.
소신 없는 정부의 행정은 아울러 수도권과 지방 주민간 갈등의 골도 깊게 하고 있다. 이천공장 증설이 무산될 경우 그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하는 청주시민들은 수도권이 균형발전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고, 이천시 주민들은 정부의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가 경제 문제마저 정치화해 편가르기를 하고 있는데,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경제와 국익”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