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질병을 키우는 사회

의약분업제 도입이후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건강보험 재정부실' 논란은 이제 의료정책을 논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다. 문제해결을 위해 처방약의 보험적용 제외나 삭감 등 여러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료인 입장에서는 기존 의약품의 한계를 극복한 신약을 처방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신약의 보험적용을 까다롭게 하거나 제외시키고, 관련 의약품을 많이 처방 하는 의사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되기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아무리 약효가 좋아도 보험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1차 약제의 부작용을 거쳐야 하고, 보험이 적용됐던 약도 슬그머니 2차 약제로 분류되거나 보험에서 제외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어떤 당뇨병 치료제는 지금까지 나온 약품에 비해 부작용이 적으면서 약효가 뛰어나지만 기존 치료제를 사용한 후 혈당조절에 실패했을 때만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는 2차 약제로 분류된다. 제픽스(B형간염 치료제)는 장기복용이 절대 필요하지만 보험은 1년으로 제한하고 있고, 일부 항생제의 경우 뛰어난 효능에도 불구하고 보험급여는 최악의 상황에서만 인정된다. 전문가인 의사가 판단, 처방하면 치료가 될 수 있는데도 질병을 키워야 보험적용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카피(Copy) 약이라도 약효에 문제가 없다면 오리지널 약(신약)과 다를 바 없다는 당국의 입장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분이 같다고 약효까지 같다는 주장은 "실험실에서 배양한 산삼과 오리지널 산삼은 성분이 비슷하기 때문에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우수한 치료제를 두고도 눈치를 보면서 써야 하는 사회, 약효를 흑백논리처럼 싼 약과 비싼 약으로 구분하는 시각이 팽배해 있는 한 국민건강권 신장이라는 말은 구두선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오리지널 '비싼 약'이 무조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신약이라도 적절한 평가 시스템을 통해 적정가격을 매겨져야 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 한번 자문 해보자. '나의 아내ㆍ부모ㆍ자식이 중병을 앓고 있을 때 카피약을 쓸 것인가 오리지널약을 쓸 것인가'. 의료인이나 환자 입장에서 보다 좋은 치료제를 갈구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 이전에 본능이다. 박상영<사회부 차장>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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