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씨네큐브에서 단관 개봉할 `아타나주아`는 서구 문화가 유입되기 이전 에스키모들의 삶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지켜볼 수 있는 영화다. 출연진은 물론 제작진의 90% 이상이 에스키모의 출신. 구전돼 온 고대신화에 기초, 에스키모의 문화를 에스키모 어로 스크린에 옮긴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만년설의 땅. 정체 모를 악령의 힘을 빌린 `사우리`가 `툴리막`을 제치고 무리의 리더가 된다. 하지만 `툴리막`의 두 아들인 `아막주아`(힘센 사나이)와 `아타나주아`(빠른 사나이)는 돋보이는 사냥꾼으로 성장, 부족의 핵심 세력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사우리`의 아들 `오키`는 자신보다 한 수 위인 두 형제를 사사껀껀 질투하는데, 자신의 약혼녀였던 `아투아`마저 `아타나주아`에게 빼앗기게 되자 깊은 앙심을 품는다. 한편 오랫동안 `아타나주아`를 사랑해 온 `오키`의 여동생 `푸야`는 `아타나주아`의 두 번째 부인이 되는데 성공하지만, 안하무인 격인 행동으로 집안의 고요를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54회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던 `아타나주아`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25개국에서 개봉,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단 2개관에서 조용하게 개봉했던 미국에서도 8개월 동안 장기 상영되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총168분의 상영시간 동안 영화가 천착하는 것은 `우열 논쟁`을 앞세운 한 문화에 의해 잊혀졌던 다른 문화의 깊은 숨결이다. 짐승뼈로 만든 선글라스나 아이를 등 뒤로 넣을 수 있는 가죽옷, 여름이면 흩어졌다가 겨울철이면 다시 모이는 형태나 한 텐트에서 두 형제와 각 부인들이 모두 벗은 채 잠드는 광경처럼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먹었나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영화가 흔들림 없이 고집하는 시선은 사실 그 이상에 있다. 달려가지만 몇몇은 늘 뒤엉키는 썰매 개나 눈밭 위를 뛰다 몇 걸음 만에 꼬꾸라지는 사냥꾼의 모습처럼, 진실 이상을 포장하지도 `문명`이란 단어로 단죄 당한 과거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영화는 조용한 만큼 힘이 있고 심각한 만큼 유쾌하다.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달려 나오는 `아타나주아`의 벌거벗은 전신을 지켜봐야 하는 것처럼 이 영화의 묵묵함은 때론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살인을 화해로 마감하고 응분의 책임도 감수하는 이들 공동체의 모습에서, 폭력으로 점철된 작금의 현대사에 `문명화`라는 점수를 줄 용기가 없어지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희원기자 heew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