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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벼린 듯 예리한 문장을 쓰는 소설가 김훈(67)의 산문집이 출간됐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라면을 끓이며'를 포함, 총 53편의 짧은 글이 실렸다. 작가의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2002)', '밥벌이의 지겨움(2003)', '바다의 기별(2008)'에 실린 글 일부와 이후 새로 쓴 원고지 400장 분량의 산문을 함께 담았다. 작가는 글머리에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고 썼다. 버리고, 다시 버리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문장들은 읽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글들은 김훈의 지난날을 이룬 다섯 가지 주제-밥·돈·몸·길·글-에 따라 총 5부로 갈라 묶어졌다. 덧댈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오직 한 글자로 이뤄진 주제들이 작가와 썩 잘 어울려 보인다. 글의 내용이나 풍기는 기운은 기존 산문집의 연장선이다. 진저리나는 밥벌이의 비루함을 털어놓으면서도 끝끝내 삶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는 모습이 평범한 삶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와 많이 닮은 듯해 언제나 반갑다.
소설가 김훈의 내면이 궁금했던 사람들에겐 좋은 기회가 될 책이다. 글쓰기를 즐긴다면 명문장을 접하는 기쁨도 함께 누릴 수 있을 듯.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