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예산 반토막 내놓고 '반도체 코리아' 찾는 한국] 정부 지원책 없으면 공염불… 중국에 시장 뺏긴 조선·해양 꼴 날수도

산업현실 모르고 부처끼리 예산편성 갈팡질팡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단순히 제조업의 한 업종이 아니다. 조선과 철강 등이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거나 동등한 위치를 허용한 반면 이들 산업은 그나마 우리가 기술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대들보이자 '보루'라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거꾸로 '수성'을 위해 해당 기업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일부에서는 이들 업종을 말하면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만 생각하지만 이들 업종에는 수만, 수십만개의 작은 기업들이 뿌리처럼 연결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연구개발(R&D) 예산과 같은 종합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태양광이나 액정표시장치(LCD)처럼 중국에 밀려 고사하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정부·정치권, 산업 현실 모르고 부처끼리 핑퐁까지=R&D 예산 삭감은 정부의 전반적인 연구비 지출 삭감 풍토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순수하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산업에 중점을 둔 정부 주도 R&D 예산은 실질적으로 전자정보디바이스 R&D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거나 삭감되는 추세다.

관련 부처의 책임도 크다. 예산 편성 권한을 지닌 미래창조과학부와 주무부서인 산업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예산만 속절없이 깎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3년 미래부가 새로 출범하며 전자정보디바이스 R&D의 예산편성권까지 가져왔기 때문이다. 미래부는 주무부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자정보디바이스 R&D 예산을 줄이면서 산업부가 자체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사이 반도체 등 핵심인력의 중국 엑소더스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정부 주도 R&D 예산의 편성조차 갈팡질팡하며 부품 업계의 불안감만 키우는 한국과 달리 중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자본투자를 주도하며 반도체·디스플레이 굴기를 외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반도체 산업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펀드 조성에 나서 투자자금이 310억달러(약 42조원)까지 늘었다. 2020년에는 1,200억달러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이 자금을 장비·후공정·인수합병(M&A) 등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전 분야에 쏟아붓고 있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 사실상 '제로(0)' 수준인 한국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중국 기업, 천문학적 지원 업고 대대적 투자=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기업들도 대대적인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교인 칭화대의 손자회사 격인 칭화유니그룹은 향후 5년간 3,000억위안(약 55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3대 반도체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청사진을 최근 공개했다.

이 같은 중국의 인해전술 앞에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결국 고사(槁死)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공세로 글로벌 시장 전체가 흔들린 태양광과 디스플레이 산업의 전철을 반도체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태양광의 경우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투자를 보조하는 식으로 중국 기업의 발전용량을 20배 키웠고 이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2012년 글로벌 태양광 관련 제품 공급이 수요를 2배 이상 앞지르면서 폴리실리콘 가격이 급락했고 태양광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당시 5대 신수종사업으로 태양광을 지목했으나 투자금 한 푼 건지지 못하고 결국 태양광 시장에서 철수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산업도 마찬가지다. OLED 패널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이 기술우위를 갖고 있어 버티고 있지만 사실상 기술격차가 사라진 LCD 시장은 중국의 공세를 사실상 따라잡기 어려운 지경까지 몰렸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가 10.5세대 공정 진출을 선언했지만 삼성과 LG는 투자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위기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김기남 사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중국이 우리 반도체 산업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향후 5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기업들의 향배가 달렸다"고 진단했다. 재계에서는 이에 대해 중국과 가격경쟁을 벌이기는 어렵고 현재의 기술격차를 더 벌리는 초(超)격차전략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기업들이 기술경쟁에 앞서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반면 정부지원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R&D 예산을 줄이는 것은 물론 연구인력 부족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산업부 안에 반도체 전문가라고 꼽을 수 있는 인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며 "삼성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방임에서 벗어나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서일범·이종혁기자

squiz@sed.co.kr


관련기사



서일범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