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남자'에 대한 고정관념은 대부분 중세 기사의 모습과 유사하다. 12세기의 이상적인 남자인 기사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힘과 배짱을 갖춘 남자, 사건의 핵심을 꿰뚫어 꽉 막혀 있는 국면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남자, 지식과 예절을 겸비한 교양인으로서 가족을 이끌어 가는 남자, 그러면서도 감정을 절제하며 언제나 강인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남자였다. 중세 이후 약 천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상적인 남성은 12세기 기사 모습 그대로다. 책은 이상적인 남성의 모습을 12세기 말에 집필된 '긴느 백작 가문사'의 주인공 아르눌 백작의 일생을 통해 추적해 나갔다.
즉 그가 어떻게 이상적인 남자로 만들어졌는지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가 만들어졌는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남성성도 사회적 관습과 문화, 정치, 제도 교육 등에 의해 학습되고 구성되는 것이라고 봤다.
예를 들어 기사교육의 시작과 더불어 소년들은 어머니와의 유착을 부정하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여성적인 부분을 제거하기를 주문받았다. 이러한 분리 과정을 통해 소년의 남성화 내지는 탈여성화가 진행됐다. 그리고 남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본 교육을 받게 됐다. 처세술과 걷는 방식, 시선 처리 방식, 신체 단련,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등의 사회화 작업을 통해 남성다움이 몸에 주입됐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남성들은 여성들과 성적으로 차별화되고 구별됐던 것이다.
아직까지 강력한 은유로 남아있는 '중세의 기사'와 남성의 진면목을 밝히는 과정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남자라는 젠더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며, 남자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진다. 2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