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은 아시아에 기웃거리기 시작한 16세기부터 고려 인삼의 가치를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암스테르담 시장을 지낸 니콜라스 비첸이 '북부·동부 아시아 지리지'라는 책에서 조선 산삼은 중요한 교역 특산품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니 말이다. 서양인들은 중국에서 한국산 산삼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말이 들리자 지체 없이 조선 밖에서 유사한 종(種)을 찾아 나선다.
산삼이 큰돈이 될 수 있다고 직감했지 싶다. 1715년 프랑스의 라피토 신부가 캐나다 퀘벡 지역에서 산삼과 비슷한 식물을 발견한 후 북미 지역에서는 '산삼 러시(wild-ginseng rush)' 가 일어났다. 아메리칸 심마니가 대거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미국 산삼의 중국 수출길이 열린 때는 1740년대. 네덜란드 상인들이 동부 애팔래치아산맥에서 다량의 산삼을 캐내면서다. 값싼 아메리카 산삼이 밀려들자 조선 조정에서는 가격유지를 위해 수출물량을 제한했다고 한다. 그때 미국 산삼이 조선산의 5분의1 가격에 거래됐다니 그럴 만하다. 지금도 애팔래치아산맥을 따라 캐나다에 이르는 울창한 산림은 북미 산삼의 주요 서식지다. 이 인근에 미국 심마니들이 많이 출몰하는 이유다. 한반도 심마니들이 개마고원이나 강원도 인제 등의 산악지대 부근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최근 미국 심마니들이 미국 동부 국립공원에서 산삼이나 장뇌삼을 불법 채취하는 일이 빈발해 공원 측과 경찰이 공조단속에 나섰다는 외신 보도다. 심마니들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국립공원까지 침범한 까닭은 가격 폭등.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의 수출이 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인의 산삼 사랑은 식을 줄 모르는 모양이다.
현재 미국산 산삼은 1온스(약 28g)에 수백달러에서 1,000달러에까지 팔리고 있다. 한국산은 뿌리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데다 채취량도 적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물량이 풍부한 미국산 거래가 활발하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인삼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리는 마당에 미국에까지 밀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