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신중함이 엉뚱함만 못한 금융산업

"사막에 드론 띄워 인터넷 보급"






이영환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사하라 사막에는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이 있다. 이들은 오아시스를 찾아 옮겨 다니며 몇백 명씩 마을을 이루고 낙타의 대변을 연료로 삼는다. 이들에게는 전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인터넷은 물론이다. 베두인족에게 인간의 문명이 왜 필요할까마는 이들에게 인터넷을 연결해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자.

인터넷 광케이블을 매설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할 테니 무선안테나를 세워 연결하거나 혹은 인공위성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보면 다소 저렴한 방법은 찾을 수 있어도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유지보수에도 막대한 예산이 들 텐데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도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몇백 명, 많아야 몇천 명을 넘지 않을 베두인족을 고객 삼아 인터넷 사용료를 받아봐야 조족지혈일 것이다.

사하라사막처럼 인터넷이 공급되지 않는 전 세계 지역에 인터넷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공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페이스북이 펼치고 있는 사업이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 오지에 인터넷을 공급하기 위해 태양전지로 3년 정도 비행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드론이 작은 것은 5만원 정도이니 고급형이라 해도 기껏해야 한 대에 수백만 원 정도면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사하라사막의 베두인족에게 인터넷을 공급하는 것은 재정이 크게 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혁신적인 해결책이다. 더 좋은 점은 베두인족뿐 아니라 아마존 정글에 사는 부족에게도 비슷한 솔루션이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의 인터넷과는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국내 얘기를 해보자. 이달 초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심사 접수가 끝났다. 카카오·KT·아이뱅크가 각각 주도한 3개 컨소시엄이 출사표를 냈다. 이 가운데 누가 1~2곳의 예비인가 대상으로 선정될지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장기적으로 분명히 미래가 밝다. 그러나 초기 고객확보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 진입하기까지는 베두인족에게 인터넷을 공급하는 사업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회는 존재할지언정 시장 상황은 쉽지 않다. 그래서 금융당국이 선정업체의 사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최저자본금을 500억원으로 제한하는 등 여러 가지 규정과 규제를 부과하며 신중히 진행하는 점은 일견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의 신중함이 지나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후진적인 우리나라의 금융경쟁력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달 발표한 국제경쟁력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쟁력 중 가장 낮은 부문은 '금융시장 성숙도'로 우간다(81위), 베트남(84위), 부탄(86위)에도 뒤진 87위를 기록했다. 세부 항목을 보면 '대출의 용이성' 119위, '금융 서비스 이용 가능성' 99위, '은행 건전성'이 113위를 기록했다.

사실 누가 보더라도 우리의 금융시장은 낙후돼 있다. 그래서 지금 금융권은 개혁을 위한 혁신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사막에 드론을 띄우는 식의 혁신적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사업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금융당국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자보다 넉넉한 자본금을 가진 사업자에 인가를 내주는 선택을 했다. 최소 500억원 규정이 그렇다. 룩셈부르크가 약 100억원 정도에 은행 인가를 내주는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다. 만일 금융당국이 과감하게 최저기준을 100억원 이상으로 낮췄다면 훨씬 더 강력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많은 사업자가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금융당국의 규제와 심사로 배양되는 것이 아니고 시장에서 선택될 때 제고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영환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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