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외부출신 전문경영인으로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새 활력
정구호 부사장 '십고초려' 영입… 기능의 휠라에 패션 날개 달아
브랜드 콘셉트 보여주기 위해 플래그십스토어도 내년 부활
패션업은 감성·이성 조화사업 2020년 국내 매출 1조 목표
김진면 휠라코리아 사장의 서초동 휠라코리아 본사 집무실 칠판에는 '플래그십스토어, 고객 접점 강화, 혁신, 리뉴얼, 시스템 개선…' 등의 문구가 빼곡히 적혀 있다. 최근 브랜드명만 빼고 모든 걸 바꾼 휠라코리아의 부활의 날갯짓이 느껴졌다. 특히 보수적인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한 첫 외부 출신 전문경영인 김 대표의 표정에서 제2의 전성기를 열겠다는 강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지난 4월 일면식조차 없던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러브콜로 휠라호의 키를 잡고 마지막 패션 인생의 항해를 시작했다는 김 사장은 "휠라는 30년 패션 인생의 화룡점정"이라며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강단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표정만큼 말투에서도 내년 SS(봄·여름) 시즌부터 적용될 디자인 혁신에 대한 확신이 넘쳤다.
"패션에서는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가 핵심인데 휠라가 인지도는 높지만 선호도가 쇠퇴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죠. 패션업에 있다 보면 모든 것이 돌고 돕니다. 신사복의 카라가 넓어졌다가 다시 좁아지고 나팔바지에서 슬림핏으로, 다시 와이드 팬츠로 돌아오듯 브랜드도 마찬가지에요.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는 고객이 '열광하다' '식상하다'가 다시 향수를 느끼며 '되돌아옵니다'. 미국에서도 징후가 나타나는데 왕년의 라코스테가 인기를 얻고 유명 편집숍 어번아웃피터스에서 휠라가 뜨기 시작했어요. 또 애슬레틱 열풍이 부는데 휠라의 아이덴티티가 애슬레틱이라는 점에서 부활의 기회가 때맞춰 온 거죠." 그는 "최근 브랜드 리뉴얼 행사에 언론을 비롯한 1,500여명의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대거 모였다"며 "론칭도 아니고 리뉴얼에 이런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휠라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방증"이라고 자신했다.
윤 회장이 새 호흡을 불어넣기 위해 김 사장에게 손을 내민 것은 휠라가 올 초 맥킨지컨설팅으로부터 종합진단을 받고 나서다. 맥킨지가 턴어라운드를 위해 제시한 세 가지 키워드는 브랜드 리뉴얼, 프로세스, 조직문화 개선. 이후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스타일의 윤 회장이 3월 김 사장을 만나 휠라 합류를 제안했다. 김 사장은 "1980~1990년대 삼성물산 해외 영업담당 당시 윤 회장은 상사맨들에게 전설 같은 존재였다"고 회상하며 "젊은 시절 아이돌이던 윤 회장에게 배우면서 역량을 쏟으면 휠라의 재도약이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김 사장이 휠라에서 제일 먼저 손댄 것은 해외 명품에나 있는 수석디자이너(CD) 제도였다. 패션 브랜드의 핵심인 디자인력과 상품력을 보완하기 위해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이던 정구호 부사장을 '십고초려'해 스카우트했다. 업계에서는 김진면과 정구호라는 좌청룡 우백호의 양 날개를 단 휠라가 이미 절반의 비상을 이뤘다는 기대가 나왔다. 물론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에서 구호·르베이지 등의 여성복을 총괄한 디자이너가 과연 침체에 빠진 스포츠브랜드 휠라를 변모시킬 수 있을지 의구심도 있었다. "피크를 찍고 내려온 브랜드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한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브랜드 콘셉트뿐 아니라 제품 디자인, 포트폴리오, 매장 인테리어 등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진두지휘하는 CD가 필요한 타이밍이죠. 마치 도메니코 데 솔레 구찌 회장이 디자이너 톰 포드를 기용해 구찌를 부활시켰던 것처럼 '기능의 휠라 스포츠'에 '패션'이라는 날개를 달아야 휠라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 부사장 만한 총감독도 없는 거죠. 실제로 사이클 등 각종 운동을 섭렵한 스포츠 마니아인 정 부사장은 쌈지 스포츠를 거쳐 빈폴골프 리뉴얼 작업 경력이 있고 무용, 패션쇼 감독, 도자기 전시회 등 비주얼 예술작업 부문에서 그를 따라올 CD는 국내에 없을 겁니다."
김 사장의 특명을 받은 정 부사장은 휠라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레트로 스타일의 '휠라 오리지날레' 라인을 내년 2월 선보일 예정이다. 휠라의 헤리티지는 그대로 가져가되 스트리트 패션과 복고풍 감성을 접목한 새로운 라인을 통해 젊은 층과 소통의 단면을 넓힌다는 전략이다. 김 사장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을 메신저로 끌어들여 '리뉴얼 휠라'로 유입하는 한편 브랜드 전체를 젊게 가져가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브랜드의 콘셉트를 보여주기 위해 플래그십스토어도 부활시킨다. 요리가 맛있으면 이를 담아내는 그릇도 좋아야 요리가 빛나는 법. 내년 5월 이태원에 4~5층 규모의 휠라 플래그십스토어를 '휠라 앞에서 만나자'며 만남의 장소로 통하는 이태원의 랜드마크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브랜드 리뉴얼 작업과 함께 딱딱한 조직 문화 개선에도 메스를 댔다. 명확한 비전 부재에서 비롯한 젊은 직원들의 갈등, 소통 부재, 소극적이며 무거운 사내 분위기를 바꾸는 게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9월 '투 비 아웃스탠딩(Two be outstanding)'을 골자로 한 '2020 비전체계'를 세웠다. 2배 성장과 2배 가치 달성의 의미와 더불어 직원 만족도 1위라는 의미다. 회사 각 부서와 구성원들은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며 자신은 최상의 퍼포먼스를 조화롭게 만드는 지휘자라는 설명이다. 실제 지금의 유연한 사고와 전략적 마인드를 겸비한 외유내강형 최고경영자(CEO)로 거듭나며 조직관리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던 데는 삼성물산 재직 시절 사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면서라고. "클라리넷 연주자로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는데 3년간 정기 연주회에 참여하면서 리더의 역할이 바로 구성원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임을 알게 됐죠. 지휘자는 강약의 리듬을 타게 하고 화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며 당근과 채찍을 조화롭게 구사해야 합니다."
김 사장은 회의명 하나부터도 딱딱한 명칭 대신 '우리'라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내포한 'WE(Weekly Ensemble) 미팅'으로 바꾼 데 이어 사내 인트라넷에 330여명의 임직원들이 본인을 소개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서로 알자(Know each other)' 섹션을 만들었다. 스스로 "일본 말 한마디도 못했는데 일본 사람같이 생겼다고 일본 팀으로 발령 받은 것이 10년간 일본 수출 비즈니스를 하며 어깨너머로 일본 패션의 선진 노하우를 배우는 중요 계기가 됐다. 나중에 은퇴하면 요리학원에 다녀볼 생각이다. 좌우명은 '늘 젊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늘 공부하는 마음으로'"라는 내용의 자기소개서를 솔선수범해 올렸다. 소탈한 CEO의 모습에 직원들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소개서를 통해 프로게이머 직원을 비롯해 서사모아 추장에게 양자로 입양될 뻔한 직원의 사연 등 다양한 끼와 개성을 접하며 눈에 보이지 않던 간극이 좁혀졌다"며 "회의에서 입을 떼지 않았던 직원들이 방언 터지듯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고 웃었다.
자기소개서를 통해 '직원 스터디'를 마친 김 사장은 부서를 돌며 회의실에서 10명씩 점심 도시락 미팅을 진행했다. 전직원 미팅을 마쳤고 미팅 2라운드에 착수했다. 리뉴얼 행사 준비를 위해 동고동락하면서 더 가까워졌고 팀워크와 소통도 훨씬 개선됐다. 김 사장은 "심지어 휠라가 다시 깨어날지 점까지 봤다"며 "모든 면이 착착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어 성공을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패션 통' 김 사장이 남성과 거리가 먼 듯한 패션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을까. 의과대학에 세 차례 떨어진 후 분루를 삼키고 화학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졸업 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1982년 섬유 수출 업무로 자연스럽게 패션업에 몸담게 된 뒤 1987년 미래 패션 경영인을 위한 내공을 쌓게 된다. 그동안 그는 평소 남자치고 옷을 좋아하는 성향과 잘 맞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김 사장은 삼성물산에 근무하며 빈폴 사업부장부터 패션 1·2부문장, 명품 카테고리까지 다양한 복종을 총괄했다. 수입 편집숍 '꼬르소 꼬모' 론칭을 진두지휘했으며 초고가 명품 '콜롬보', 토종 SPA '에잇세컨즈' 대표 등을 지내며 주요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었다.
30년간 깨달은 것은 패션업은 감성과 이성을 조화시키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물을 많이 넣으면 넘치고 적게 넣으면 새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 '계영배'처럼 패션 또한 감성과 이성이 밸런스를 잃으면 고객이 등을 돌린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회의하면서 균형 감각을 잃을 때 책상 위 계영배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는 그는 결국 경영자는 퍼포먼스로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며 "현재 4,000억원의 국내 매출을 2020년까지 1조원 규모로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감성과 이성이 고른 조화를 이룬 휠라를 다양한 색깔을 가진 '페르소나가 있는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게 그의 패션 인생 마지막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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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군 3개 라인업 재편… 국내 스포츠 리딩 브랜드로 재도약" 휠라코리아 23년만에 브랜드 리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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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심희정기자 yvette@sed.co.kr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