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마지막날 정신 돌아온 치매 노모 반지 빼주며 "죽어도 소원 없다"

이산상봉 마무리

"안 필요해도 내가 주고 싶어. 버리더라도 갖고 가라."

김월순(93) 할머니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꺼내 60여년 만에 만난 북한의 아들 주재은(72)씨의 손에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안 주셔도 돼요, 어머니"라며 받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어머니의 뜻을 꺾지 못했다. 치매 증상 때문에 지난 24일 첫 단체상봉에서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던 김 할머니는 이날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예감한 듯 아들을 알아보고 "내가 죽어도 소원이 없다"며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26일 금강산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안타까움의 눈물과 함께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를 끝으로 20~22일, 24~26일 두 차례 진행된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마무리됐다.

이번 2차 상봉단의 최고령자인 이석주(98) 할아버지는 북한의 아들 리동욱(70)씨가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입고 있던 코트와 목도리를 벗어 아들에게 건넸다. 이복순(88) 할머니는 속초로 향하는 버스에서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1972년 납북된 '오대양 62호'의 생존자인 아들 정건목(64)씨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번 상봉은 오랜 분단이 만들어낸 남북 간 이질성과 함께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상시화의 필요성을 보여준 계기로 평가된다. 한 참가자는 "조카들과 대화를 해보니 물질적인 통일은 이루더라도 정신적인 통일은 요원할 것"이라며 "삼촌과 조카 간에도 이런데 남남 간에는 얼마나 힘들겠나. 민족의 비극"이라고 한탄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상봉 당사자 대부분이 80대 이상의 고령이기 때문에 건강 문제로 행사에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일하는 한 접대원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여러 번 치렀는데 점점 연세가 많아지는 것이 느껴진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어서 이런 행사가 많이 열려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박경훈기자 socoool@sed.co.kr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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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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