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국제여단




자유민주주의 수호. 단 하나의 가치를 지키려 세계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었다. 선거로 뽑힌 ‘인민전선’을 전복하려 스페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세계 53개국의 젊은이들이 산맥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

시발점은 1936년 10월14일. 프랑스인 500여명이 스페인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보수도 없이 자원한 국제의용군은 프랑스 9,000명을 비롯, 이탈리아 3,350명, 독일ㆍ폴란드ㆍ소련 각각 3,000명, 미국 2,800명, 영국 2,000명 등 모두 3만3,750여명. 빈약한 무장에도 반란군의 공격에서 마드리드를 지켜낸 이들은 곧 ‘국제여단’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국제여단에는 시대의 좌절과 희망이 섞여 있었다.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직업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자유라는 명분에 몸을 던졌다. 세계의 지성도 몰려들었다. ‘인간의 조건’과 ‘희망’을 남긴 작가이며 프랑스 문화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와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국제여단 소속 병사로 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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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국제여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물 농장’과 ‘1984년’을 썼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도 미국인 대대를 취재하는 종군기자였던 헤밍웨이가 몬태나 대학의 스페인어 강사 출신인 로버트 조던의 참전과 죽음을 작품화한 것이다.

파시스트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 뭇솔리니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쿠테타군의 무력 앞에 국제여단은 비록 절반이 죽거나 다치고 실종된 끝에 실패로 끝났지만 인류 정신사의 꺼지지 않는 횃불로 남아 있다. 36년간의 장기집권 뒤 자연사한 독재자 프랑코 총통의 이름은 기억 속에 사라져도 당대의 지성인들이 목숨을 던졌던 ‘국제여단’의 가치는 시대를 넘어 꿈틀거린다. 유럽을 휩쓸고 국내에서 번역본이 소개된 스페인 만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2009년)도 국제여단의 활약과 스페인 내전의 상흔의 그린 작품이다.

79년의 시차 속에 스페인과 중동의 지도가 머리 속에서 교차한다. 수많은 난민을 발생시킨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깃발 아래 좌절한 젊은이들이 끼어들고 있다. 철없이 가담한 한국 청소년 김모 군도 생사마저 불분명한 상태다. 인간의 역사가 과연 앞으로 나가는지 한숨이 나오지만 국제여단의 젊은이들이 죽음으로 지켰던 자유와 정의, 휴머니즘의 가치와 복원력을 믿을 뿐이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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