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위기의 솅겐조약


유럽을 다녀온 여행객이라면 '한 국가를 다녀온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경을 건널 때 여권이나 보안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한 것은 검문검색 없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도록 한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 덕분이다. 조약이 탄생한 것은 딱 30년 전인 1985년 6월14일.

그날 유럽경제공동체(EEC)회원국인 프랑스·독일·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 5개국 대표들이 룩셈부르크의 작은마을 솅겐 근처 모젤강에 떠 있던 '프린세스 마리 아스트리드'호 선상에 모였다. 이들은 5개국 국경에서의 검문검색과 여권검사 면제에 합의하고 조약문에 서명했다. 이렇게 출발한 솅겐조약은 세를 불려 현재는 모두 26개국이 가입돼 있다.

폴란드에서 포르투갈까지 약 4,000㎞에 달하는 광활한 유럽대륙에서, 약 4억명의 인구가 여권 제시 없이 통행할 수 있다. 외국인도 한 국가에서 비자를 받으면 조약국 내에서는 이동이 자유롭다. 솅겐조약이 유럽 통합의 상징이자 유럽행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자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주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파리 테러로 '하나의 유럽' 건설이 난관에 봉착했다. 특히 솅겐조약이 추구하는 유럽의 원칙과 정체성마저 흔들어놓고 있다는 소식이다. 테러범들이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테러를 계획, 실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약국 간 이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벌써 독일·오스트리아 등은 국경 검문에 들어갔고 프랑스는 육로로의 입출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유럽 국가들마저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모양이다. 난민 문제로 촉발된 혼란 앞에 유럽이 최대의 분열 위기다. 지난 30년간 솅겐조약에 대한 숱한 도전을 단합을 통해 이겨냈듯이 이번 역시 유럽 통합의 정신으로 극복하기를 기대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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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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