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뺨의 도둑


뺨의 도둑-장석남 作

나는 그녀의 분홍 뺨에 난 창을 열고 손을 넣어 자물쇠를 풀고 땅거미와 함께 들어가 가슴을 훔치고 심장을 훔치고 허벅지와 도톰한 아랫배를 훔치고 불두덩을 훔치고 간과 허파를 훔쳤다 허나 날이 새는데도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그만 다 지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번엔 그녀가 나의 붉은 뺨을 열고 들어왔다 봄비처럼 그녀의 손이 쓰윽 들어왔다 나는 두 다리가 모두 풀려 연못물이 되어 그녀의 뺨이나 비추며 고요히 고요히 파문을 기다렸다


뉴기니의 바우어 새 수컷은 신방을 꾸미고 또 꾸며 암컷을 유혹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마침내 암컷이 스윽 창을 열고 들어오면 그녀의 굴뚝 빛 뺨에 난 창을 열고 손을 넣어 자물쇠를 풀고 들어간다. 심장을 훔치고 아랫배를 훔치다가 그만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저를 꼭 닮은 유전자를 남기고 나온다. 짐을 옮길 때는 다리가 풀리면 안 되지만 사랑을 할 때는 다리가 풀려야 제 맛이라고. 사랑, 모든 걸 다 훔치거나, 모든 걸 다 잃거나! 지금 당신의 뺨을 열고 스윽~.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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