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송길영의 ‘세상 사는 이야기’] '콘텐츠 유통 권력'의 이동에 대한 단상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5년 11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오랫동안 갑의 위치에서 절대적 지위를 누려왔던 곳들조차도 최근엔 강압적으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최근 콘텐츠 업계의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는 ‘신서유기’가 화제입니다. 신서유기는 케이블 TV 업계 강자인 tvN이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로 흥행몰이를 한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 그리고 공중파 연예인들인 강호동과 이승기 등이 만든 ‘여행 리얼 버라이어티’ 콘텐츠입니다.

신서유기는 방송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방송물로 분류되지 않는 웹 콘텐츠입니다. 공중파나 케이블 같은 기존 방송 채널에는 전혀 방영되지 않고, 오직 인터넷에만 노출되고 있습니다. 신서유기는 최근 무려 4,000만이 넘는 페이지 뷰를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신서유기의 가장 큰 매력은 금기가 깨지는 쾌감입니다. 비속어를 비롯해 실제 상품 로고가 모자이크 없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브랜드에 대한 직접 언급도 자유롭습니다. 이런 내용이 주류 방송인들인 강호동이나 이승기 등에 의해 이야기된다니 그야말로 금지된 비본(?本)을 읽는 기분이 들기까지 합니다. TV 화면에서 봤던, 방송법에 제한을 받던 기존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모습에 신선한 느낌마저 듭니다.

앞으로 유사한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시청자들이 느끼는 신선미는 급속히 사그라질 테지만, 광고주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콘텐츠가 상당 기간 가장 매력적인 홍보 도구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까지 자사의 상품이 또렷하게 부각되던 홍보 도구는 없었으니까요. 기존의 CF나 PPL(Product PLacement·영화나 드라마 속에 소품으로 광고 상품을 넣는 것)은 더는 성에 차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노출 횟수(Page View)를 계측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로그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 어떤 사람들이 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알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홍보 도구로서 이런 콘텐츠의 매력은 배가됩니다. 기존 광고의 효과 분석이 안갯속을 더듬으며 걷는 기분이었다면, 이 새로운 도구의 효과 분석은 질주하는 오픈카에서 바라본 청명한 가을 하늘만큼이나 시원하고 또렷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새로운 종류의 콘텐츠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입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콘텐츠에는 광고주들이 지갑을 열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특히 맥락과 무관하게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광고와 재미없는 콘텐츠의 결합은 최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1도(아주 적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콘텐츠의 완성도를 올리기 위해 제대로 된 콘텐츠 제작자 및 방송인들과 일하려면 제작에 드는 비용이 상당히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크기가 커질수록 투자가 더 많아질 것이기에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방송인들은 방송국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개런티 디스카운트 요구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신서유기 같은 콘텐츠가 성공하고 보편화한다면 방송인들이 설 자리가 많아지므로 굳이 이들의 요구를 받아줄 필요가 없어집니다. 제값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 변화가 마뜩잖을 수도 있습니다. 방송국들은 수십 년간 제한된 매체 상황과 채널 수를 무기로 일종의 권력을 유지해왔습니다. 몇몇 스타를 제외하고는 방송인들을 고를 수 있는 ‘갑의 상황’에 익숙했었죠. 하지만 앞으로 방송인들이 ‘아쉽지 않은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방송국으로서는 아무래도 불편한 생각이 들 확률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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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와중에 넷플릭스 Netflix가 내년 초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한 달 10달러도 안 되는 요금으로 무제한 콘텐츠를 볼 수 있게 한 넷플릭스는 현재 미국 시청 가구의 36%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너무나 싼 가격으로 훌륭하기까지 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람에 월 50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요구하던 케이블 TV 업체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벽에 붙은 TV보다 훨씬 가까이 있는, 내 손 위에 쉽게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운 데다가 똑똑해지기까지 한 전화기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이 일상용품이 되면서 TV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서유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콘텐츠 제작자들이 네이버와 같은 포털까지 채널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은 방송국에 더욱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효과를 직접 계측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상업적 메시지의 표현에 더욱 효율적인 매체가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방송국의 주요 수입원(광고)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한 국가의 광고비 총액은 그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즉 광고비 총액은 경제규모에 연동되기 때문에 거의 고정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광고 수단이 떠오른다는 말은 기존 광고 수단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포털사이트가 떠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신문사의 경영상황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합니다.

방송국 같은 기득권 매체의 힘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콘텐츠와 이 콘텐츠에 들어가는 광고의 형식을 제한하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그런 제약을 넘어서는, 즉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힘이 제한되는 곳(예를 들면 해외)에서 콘텐츠의 제작이 이루어진다면 기득권 매체를 보호하기 위한 시도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극장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의 극장은 최신 콘텐츠를 제한적으로 보던 곳이었습니다. 필름 개수로 배급을 제한하던 시스템이었다 보니 1편과 2편의 필름을 근처 극장이 나눠 교차 상영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개봉상영관의 제한으로 객석이 한정되었기에, 처음 100만 관객을 넘어선 서편제의 흥행 역시 한정된 객석 수로 인해 관람객의 숫자가 지금과 비교하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제는 집에서 바로 개봉되는 PPV(Pay-Per-View) 시스템이 있으므로 그런 제한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3D나 4D 등으로 무장한 영화가 극장의 쇠락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몰입을 위한 기술로는 적격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흥행의 성패가 불확실해 특수효과를 위한 제작비를 무한정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죠. 이 때문에 극장 업계는 주로 화질과 사운드로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TV 모니터의 대형화나 빔프로젝터 등의 등장으로 안방의 PPV도 경쟁력이 올라가면서 극장과의 정면승부도 상당히 해볼 만한 싸움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오큘러스(Oculus·가상현실 게임을 위한 장비)와 같은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나 고글의 개발은 PPV 쪽에 더욱 힘을 실어줍니다. 극장 측은 여러모로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극장의 경우에는 방송국의 상황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상황 판단이 민첩한 일부 극장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 극장은 최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널찍한 공간을 제공하는 골드클래스에서부터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네 드 쉐프(Cine de Chef·극장 겸 레스토랑)’, 심지어 침대가 놓여 있는 ‘템퍼시네마(Tempur Cinema·누워서 영화 감상이 가능한 극장)’까지 등장했습니다.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것을 넘어 한때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장소로, 특별한 공간으로 극장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죠.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던, 그리고 절대적 지위를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 같았던 곳들마저도 이렇듯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요구는 매우 강압적입니다. 여러분들이 몸담고 계신 곳의 상황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이런 요구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십니까?



김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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