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사방을 봐도 그렇고 땅에는 색이 변한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봄에 나무에서 솟아났던 녹색의 새싹이 이제는 나무에서 떨어져 땅 위에 붙어 있다. 저 낙엽은 나무를 떠나 땅과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인간도 때가 되면 흙으로부터 나온 것을 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한 육신과 위로부터 온 양식을 먹고 생명을 키워 온 영이 분리돼 육은 본향인 땅과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고 영은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입성한다. 인간도 분리와 새로운 소속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주권자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삶도 분리와 새로운 소속으로 이어지도록 인도하시지 않겠는가. 예일대 교수인 미로슬라브 볼프가 쓴 '배제와 포용' 책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다룬 바가 있다. 가만히 보면 인간의 삶의 역사가 '분리'와 '새로운 소속'의 연속임을 깨닫는다.
성경의 인물을 보면 모세는 태어나서 얼마 못돼 부모를 떠나 바로 왕의 공주에게로, 바로의 궁정을 떠나서 미디안 광야로, 그리고 미디안 광야를 떠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분리와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었다. 이것을 보면 인생에서 분리의 경험으로 슬퍼하거나 우울증의 늪에 빠질 일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바라보면 새로운 만남의 경험을 낳기 위한 고통과 괴로움으로 마음잡는 것이 유익하기도 하고 바른 마음일 것이다.
더 깊게 들어가면 인간의 내면세계는 인간의 본성을 떠나서 신의 성품을 입는 것도 분리와 새로운 소속에 해당된다. 인간은 스스로 이러한 길에 들어설 수 없다. 여기에 C.S.루이스는 그의 책 '고통의 문제'에서 신은 때로는 고통을 통해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떠나고 그 의지의 원래 주인이신 신에게 귀속하는 새로운 소속을 경험하게 한다고 해석한다. 모든 것이 근원지로 돌아가는 새로운 만남을 가지기 위해서 분리의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리라. 이것이 창조자요 주권자의 섭리라면 그 누가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생사에서 출현하는 고통스러운 일들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좌절·우울증·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만남을 바라보며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내면적으로는 본성적 자기 의지를 떠나 신의 성품으로 귀속되는 놀라운 경험과 인생사에서 뜻하지 않은 새로운 만남과 소속되면서 타인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자기 내려놓기라는 말로 표현한다. 아마도 저 낙엽은 자기를 내려놓을 때를 주시는 창조자의 섭리에 순응하는 자연의 미를 인간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낙엽을 보노라면 인생이 보이고 창조자가 보인다. 낙엽은 결국 땅에 스며들어 다른 생명체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며 자신을 완전히 희생할 것이다. 저 낙엽은 인간에게 배우라고 한 의도는 없었겠지만 오늘은 저 낙엽이 스승이다.
눈을 들어 대한민국을 바라본다. 분단이라는 분리의 끝자락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언제 이 분리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소속, 통일국가로의 소속을 맞이할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역사의 시간이 그 경험을 경험할 수 있는 시점을 향해서 가도록 주권자께서 섭리하고 있으리라. 이산가족이 모두 가족을 만나고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따뜻한 시대를 경험하고 싶다. 민족의 고통으로 민족이 분단을 경험하고 새로운 하나의 국가가 된다면 세계를 이롭게 하는 위대한 국가이리라.
하충엽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