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아산 탄생 100년] <1> 근검절약이 몸에 밴 회장님

■ 5부. 인간 정주영









1 복흥상회쌀가게주인아주머니와함께
정주영(왼쪽)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34년 복흥상회에서 일하던 당시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담배 한 개비와 전차 삯에 나가는 돈도 아까워 할 정도로 투철했던 정 명예회장의 근검절약 정신은 현대라는 굴지의 기업을 일구는 단단한 밑거름이 됐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새마을연수원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5년 신입직원을 교육하는 현장인 새마을연수원에서 운동화를 신고 있다. 일절 격식을 차리지 않는 활동복 차림에서 보듯 정 명예회장은 기업의 리더가 된 후에도 소탈한 자세와 절약 습관을 잃지 않았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전차 삯 아끼려 걸어 다니고 돈 낭비라며 담배도 안 피워

최고위층에 올라선 이후에도 서민들과 '낮은 곳'서 부대껴

지금의 오너들과는 다른 행보… 최근 일부 '갑질 횡포'에 경종


'스스로 땅을 찾아 말뚝을 박은 사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평가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나 구인회 LG 창업주와 달리 정 회장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같은 출신 성분은 '인간 정주영'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근검절약 정신을 굴지의 기업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한 이후에도 그대로 견지하면서 다른 재벌 기업의 회장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철학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세 켤레 구두로 30년…'타고난 절약 정신이 현대 일군 밑거름'=강원도 통천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정 명예회장이 소학교를 끝으로 '학업의 꿈'을 접은 것도 가난 탓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난에 발목 잡혀 체념하는 대신 가난이 불가피하게 잉태한 절약 습관을 더 나은 인생을 설계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막노동으로 공사판과 건설 현장을 전전하던 정 명예회장이 가출 이후 처음으로 정착한 곳은 쌀가게 '복흥상회'. 삼시 세끼 식사와 쌀 한 가마니 값만 월 급여로 받으면서도 군소리 없이 묵묵히 일하는 정 명예회장은 금세 주변 상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이런 평판 덕분에 복흥상회에서 일한 지 3년 만에 정 명예회장은 원래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넘겨받으며 마침내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생전의 정 명예회장은 "복흥상회의 쌀 배달꾼이었을 때 전차 삯 5전을 아끼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오래 신으려고 구두에 징을 박고 다녔으며 겨울에는 내복으로 추위를 견디며 춘추복 한 벌로 1년을 지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경일상회'로 이름을 바꾼 이 가게는 1939년 일제의 전시체제령에 따른 쌀 배급제 실시로 문을 닫지만 근검절약을 바탕으로 한 '알뜰한 경영 습관'은 이후에도 지속된다.

오늘날 현대자동차그룹의 씨앗이나 마찬가지인 '아도서비스'라는 이름의 자동차 수리공장을 운영할 때의 일화. 당시 정 명예회장은 종업원을 60명 이상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국 한 그릇과 김치'만으로 아침을 해결했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의 어머니와 아내인 변중석 여사는 종업원들을 위해 매일같이 식사를 머리에 이고 날랐다. 일반 노동자의 일치단결된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 '안방마님'이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누빈 것이다.

근검절약에 관한 정 명예회장의 에피소드는 그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담배 한 모금이 사무치도록 생각나던 막노동꾼 시절에도 "배가 부른 것도 아닌데 연기로 날려버리는 돈이 아까워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그는 대기업을 이끄는 '회장님'이 된 후에도 자신의 철학을 현장 근로자들에게 전파하며 근검절약하는 습관이 현대를 떠받치는 정신적 기둥이 되기를 바랐다.

"집도 없으면서 텔레비전은 왜 사서 셋방으로 끌고 다니는가, 라디오 하나만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아니까 집 장만할 때까지는 참아라" "회사에서 작업복부터 수건, 심지어 속옷까지 다 사주니까 옷 사는 데 돈 쓰지 말고 저축해라" "양복은 한 벌만 사서 처가에 갈 때만 입어라" 등 직원들을 향한 애정 어린 충고는 정 명예회장 자신이 몸소 실천한 행동들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일원으로 정 명예회장을 14년 가까이 보좌했던 박정웅 메이텍인터내셔널 회장은 "같은 디자인으로 된 세 켤레의 구두로 30년을 신더라"며 "뭐니뭐니해도 청운동 자택을 가보고 정 명예회장의 근검절약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했다"고 전했다. 색이 바랜 것도 모자라 군데군데 해진 소파의 가죽, 하도 오래돼 건들거리는 목재 테이블의 다리, 거실 중앙에 자리 잡은 볼품 없는 소형 TV 등 집안 곳곳에 놓인 가전제품과 가구들은 재벌 회장의 저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소박하고 평범했다는 얘기다.

◇'갑(甲)질 횡포'로 얼룩진 대기업에도 시사점 던져='인간 정주영'의 참모습은 오늘날 우리 기업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이 재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거리 노동자로 사회 경력을 시작한 정 명예회장은 기업 회장이라는 최고위층의 자리에 올라간 후에도 서민들과 부대끼며 '낮은 곳에서의 삶'을 묵묵히 이어갔다.

그룹 총수의 보복 폭행, '땅콩 회항' 등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그릇된 행태는 일반 국민과는 완벽히 유리된 윤리 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정 명예회장의 일생과 대비된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은 "악행을 밥 먹듯 행하는 재벌 3세가 평범한 형사 앞에 무릎을 꿇는 영화 '베테랑'의 권선징악 스토리에 1,300만명의 관객이 열광한 사례는 재벌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얼마나 부정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젊은 기업가들이 정 명예회장과 같은 1세대 기업인을 본받아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co.kr


관련기사



권홍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