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거래소가 잇따라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을 바꿔 상장 문턱 낮추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1월 초 적자 기업도 시가총액과 자본금 요건만 충족하면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할 수 있게 길을 터 주더니 이달 3일에는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특수관계인에 대한 보호예수 의무 동의를 받지 않고도 상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번 개정 덕분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호텔롯데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는 했다.
거래소 측은 "최대한 많은 기업에 상장 기회를 부여해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배경을 강조하고 있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우선 보호예수 규제 완화의 경우 거래소의 이번 조치는 수년간 이어져온 증권업계의 보호예수 관련 규정에 대한 수많은 개정 민원을 묵살해온 그간 행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업공개 시장의 초대형 물건인 호텔롯데가 상장을 앞두고 보호예수라는 암초를 만나자 거래소가 급히 규정을 바꿔 사실상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적자 기업에 유가증권시장의 문을 개방한 점도 특혜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현 상황에서도 실적 가시성이 낮지만 미래 성장 잠재력이 무궁한 기업에는 바이오·첨단 기술주 중심의 코스닥 시장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고 있다. 현재 코스닥 시장에서 시가총액 8조~9조원을 넘나드는 '대장주' 셀트리온이 대표적 사례다. 우량 기업 중심의 안정성을 기본 정체성으로 삼는 유가증권시장이 굳이 성급하게 적자 기업에 문호를 열어줘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당기순손실 280억원을 기록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코스닥이 아닌 유가증권시장에 끌어오기 위한 사전 포석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한 이유다.
불필요한 상장 규제를 푸는 데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그 목적이 특정 기업만을 겨냥했거나 눈앞의 실적에 현혹돼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거래소 관계자들이 옷깃 여미고 자문해볼 일이다. /증권부=박준석 기자 pj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