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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중심가인 센트럴에 있는 IFC몰에 들어섰을 때 회색 인물등신상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뭐 특별한 일이 있나 싶어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앞에 섰다.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표적이 움직이는 것 아닌가. 거리의 명물들처럼 분장한 사람이었다. 진짜 동상인 것도 있고 실제 사람도 섞여 있었다. 최고의 인기는 스티브 잡스였다. 기념사진을 찍히고 있는 것이 실제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그냥 동상이다. IFC몰에서 현재 '빅네임스(BIGNAMES)'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유명인사들의 '스태처마임(움직이는 동상)' 이벤트였다. 동서양 문화의 용광로이자 끊임없이 시도되는 이벤트와 새로움을 불러일으키는 홍콩. 영국의 동아시아 지배거점으로 탄생해 '동방의 진주'로 불린 홍콩은 건재했다.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흡수된 지 18년이다. 중국색이 짙어졌지만 여전히 세계 여행·쇼핑객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그늘도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이 커지고 있고 빈부격차는 오히려 심해진다. 가깝고도 먼 이웃 홍콩을 찾아가봤다.
◇화려한 날들은 계속된다=홍콩의 강점은 융복합에 있다. 원래 원조를 상관하지 않고 불러모아 새로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홍콩이다. 센트럴 지역 IFC몰의 스태처마임들이 그렇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유럽이나 미국 유명인사지만 홍콩이라는 지역에 잘 어울린다.
바다를 건너 침사추이로 가보자. '1881헤리티지'는 영국 빅토리아(재위 1837~1901) 시대를 재현한 곳이다. 이 건물은 1881년부터 1996년까지 홍콩 해양경찰 총본부로 사용됐다. 수많은 건물과 역사적인 자료들이 보존, 복구됐고 지금은 쇼핑몰과 호텔·전시공간으로 변신했다. 꼭 비싼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전경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곳이 헤리티지다.
홍콩 시내를 다니다 보면 해안가에 빈 땅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홍콩의 명물 회전관람차 근처도 그렇다. 땅값 비싼 홍콩에서 무슨 낭비냐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한다. 바다를 매립한 곳으로 적어도 10년은 그대로 둬야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단단한 땅이 된다.
◇어두운 그늘도 관광상품=홍콩의 고층아파트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광경이다. 아파트는 서울에도 있지만 홍콩 정도는 아니다. 50층 이상 초고층아파트가 즐비하다.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이 살려고 하니 치솟을 수밖에 없다.
홍콩의 비싼 집세는 악명이 높다.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홍콩은 완전자유시장을 유지한다. 즉 소득세는 아주 낮고 상속세는 아예 없다. 자본가가 자본을 모으기에 여기 만큼 좋은 곳은 없다. 임금도 낮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얼마든지 싼 노동자를 끌어올 수 있기에 저임금을 정책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서민 교통수단인 트램이나 소박한 건물들은 이런 사회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맥도날드 매장의 노숙자인 '맥난민'이 급증한다는 뉴스와 한 홍콩재벌이 일곱 살 된 딸을 위해 560억원짜리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는 논란이 공존하는 곳이 홍콩이다.
◇중국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얼마 전 홍콩은 한국과 전염병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5월 한국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발생한 직후 홍콩은 여행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자국민의 한국 방문을 막았다. 이어 7월에는 홍콩독감이 유행하면서 한국인들의 홍콩 여행이 급감했다.
10월 홍콩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행사에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수반)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렁 행정수반은 "경제적으로도 최근 5년간 양국의 무역액이 연평균 6%씩 성장해온 밀접한 관계"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앞서 8월에는 홍콩관광청이 드물게 한국 여행기자들에 대한 팸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경제·정치적으로 홍콩의 최대 고객은 중국이다. 애드미럴티 중심가에는 113m, 28층 규모의 중국 인민해방군 주홍콩본부 빌딩이 위압적으로 서 있다. 과거 영국 해군본부를 중국이 1997년 접수했다. 중국인 관광객 4,700만명이 지난 한해 홍콩을 찾았다. 다만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운동과 경기침체로 유입이 줄면서 홍콩 경제까지 최근 휘청이고 있다 /글·사진(홍콩)=최수문기자 chs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