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삼성의 3개 화학 계열사를 거머쥐면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인수합병(M&A) 행보에 또 한번 큰 획을 긋게 됐다. 지난 2월 롯데렌탈(옛 KT렌탈), 5월 롯데뉴욕팰리스호텔(더뉴욕팰리스호텔) 등 굵직한 인수전을 치른 지 불과 반년여 만이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의 M&A에 따라 화학업계의 판도에도 적잖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신 회장의 이번 삼성SDI 케미컬 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인수는 올해 롯데그룹의 총 M&A 규모를 넘어서는 액수로 추정된다. 롯데는 자세한 금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롯데렌탈의 경우 1조원 안팎에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는 9,500억원을 들였다. 삼성의 화학 3개사 인수에 필요한 금액은 약 3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롯데그룹이 실시한 M&A의 전체 규모와도 비슷한 수준이다.
신 회장의 이 같은 M&A 행보는 2004년만 해도 매출 32조원 규모였던 한국 롯데그룹을 89조원의 재계 5위 그룹으로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 회장은 내부적으로도 도전과 변화를 부쩍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도전과 변화(Challenge & Change)'를 주제로 주재한 지난해 11월 사장단 회의에서 "기존 사업을 위협하는 아이템이나 사업이 있다면 바로 그 사업을 최우선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롯데가 이처럼 M&A에 적극적일 수 있는 이유는 유통업을 기반으로 한 든든한 현금동원 능력 때문이다. 롯데는 2월 전 세계에 495개 매장을 가진 세계 6위 면세점 월드듀티프리(WDF)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비록 수포로 돌아갔지만 WDF의 인수가격은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됐었다.
화학업계에서는 롯데의 움직임이 업계의 지각변동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롯데케미칼은 그동안 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 등 범용 화학제품을 중심으로 수익을 올려왔다. 반면 삼성SDI 케미컬 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은 '스페셜티 케미컬'로 불리는 특수화학 제품, 고부가가치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탄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범용 제품 사업에 스페셜티 케미컬 사업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석유화학 자급률이 60%를 넘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도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은 신사업에도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올 들어 미국 셰일가스 기반 에탄 분해 설비에 2조9,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며 우즈베키스탄 수르길에서는 가스화학단지를 완공하고 내년부터 본격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 특수고무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신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편 롯데와 삼성의 화학 빅딜이 고순도 테레프탈산(TPA) 업계 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근 화학업계에서는 공급과잉 상태인 TPA 제조기업(롯데케미칼·한화종합화학·삼남석유화학·효성 등) 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조성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기업들이 TPA 구조조정에 나서려는 움직임은 없지만 롯데의 삼성 3개사 인수를 계기로 논의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