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연일 터져 나오는 일회성 재난의 공포는 일상을 뒤흔든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정작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빈곤·세대·지역 갈등 같은, 비교적 오랜 시간 서서히 우리 삶을 짓눌러 온 공포에는 침묵하고 피로를 느낀다.
유럽 최고의 지성 지그문트 바우만과 철학자 겸 정치이론가 레오니다스 돈스키스는 '가난한 인간적 감수성'과 이에 따른 '공감의 파괴'를 지적하고,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돌리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두 사람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 독특한 종류의 도덕적 불감증을 '아디아포라(adiaphora)'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디아포라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를, 즉 일종의 도덕적 마비 상태를 함축하는 단어다.
일회성 재난의 공포는 대중을 자극해 행동에 나서도록 한다. 반면 소득과 기회의 불평등처럼 천천히, 알아차릴 수 없게 증가하는 문제 앞에서 많은 이들은 영리하게(?) 침묵을 지킨다. 불안이라는 공통의 감성만이 표류하는 유동적 세계(Liquid Modernity)에서 악(惡)이란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 평범한 삶의 사소함과 진부함 속에 숨어있다.
"시청률 전쟁과 흥행 수익이 삶의 리듬을 좌우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첨단 장치와 온갖 잡담, 험담에 빠져 있는 곳에서, 중요한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시간이 없는 우리의 황급한 삶 속에서 타인의 곤경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손수 만들고 있는 암울한 미래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쓰디쓴 디스토피아다. 감수성을 상실하고 상황적 양심만이 부유하는 시대, 인간적 유대가 간헐적으로만 유지되고 단어와 맹세의 인플레이션이 만연한 세계. 이 도덕적 불감증 속에서 부정과 배반은 더는 충격적인 악이 아니다.
책이 제시하는 종착역은 그러나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다. 두 사람은 사랑, 우정, 충성 그리고 창조 정신이 있다면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