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자 집안 출신으로 오늘날 글로벌 LG전자의 기초를 다진 모하(慕何)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이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LG전자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7일 0시10분께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193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서울대 철학과 졸업 후 같은 해 락히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 입사해 오늘날 재계 4위 LG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1958년에는 금성사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금성사 사장(1989~1992년), 부회장(1993~1995년)을 거쳐 1995년 LG전자 회장에 오른다. 1991년에는 한국가전산업협의회 회장직도 역임하며 한국 전자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라디오를 파는 영업부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깐깐한 원칙·품질제일주의를 고수해 LG전자가 오늘날 세계적 가전업체로 성장하는 기틀을 만들었다. "붉은 신호면 선다"는 말이나 "빈대를 잡기 위해서라면 초가삼간이라도 태운다"는 말은 그가 평생 지켜온 원칙·품질제일주의를 잘 대변해준다.
이 전 회장은 이 같은 올곧은 자세 덕분에 구자경 전 LG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회장이 1989년 초 금성사 체질 개선에 착수할 때 구 전 회장은 그가 마음 놓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연중 기업 성과보고 횟수를 2회로 줄였다고 한다.
또 한학자 가문 출신의 이 전 회장은 LG전자만의 고유용어인 '노경(勞經) 관계'를 창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노동자(勞)와 경영진(經)이 화합하고 상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1989년 이후 LG전자는 노사 무분규 행진을 죽 이어왔다.
이 전 회장은 LG인화원장을 끝으로 199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학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고인은 2010년·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사재 80억여원을 한국 실학 연구단체인 실시학사(實是學舍)에 기부했다. 실시학사는 이후 공익재단으로 전환하고 '모하 실학논문상'을 제정해 2011년부터 시상해왔다.
한편 LG그룹은 자녀를 두지 않았던 고인의 장례를 회사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9일 영결식이 끝나면 고인은 경기도 광주 시안가족추모공원에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