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자의 눈] '땅콩 회항' 사태 1년이 남긴 또 다른 숙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서부지검 출석1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해 12월17일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검찰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정부와 입법부의 규제에 반(反)기업 정서까지, 기업 하기 참 힘들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고위관료는 "기업을 옭아매는 유무형의 사슬이 많다는 점을 밖에 나와보니 알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기업의 역할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인데 정부와 시민사회가 때로는 이런 활동을 방해한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털어놨다. 평생 기업을 규제하는 행위에만 몰두했던 공정위 전직 간부의 뒤늦은(?) 고백을 들으면서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명 '땅콩 회항' 사건이 떠올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지난해 12월5일, 미국 공항에서 KE 086편의 이륙을 지연시킨 '항로변경죄'의 혐의를 받아 5개월가량 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조 전 부사장의 '갑질'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고 지금도 그를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악'의 굴레를 씌운다.

하지만 사건 1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제 냉정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은 분명 상식의 궤를 벗어나 과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의 일탈 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가 던진 단죄의 수위가 과연 합당했느냐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 가해진 사법적 잣대의 수위에 한치의 정서적 판단도 담겨 있지 않았는지, 일부 국민의 분노에 이성을 과도하게 넘어서는 감성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실제로 비판 물결에 고개를 숙였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쌍둥이 엄마인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을 살게 할 정도로 엄중한 일인가"라는 분명한 의문도 있었다. 기업인들이 모인 뒷골목 대폿집에서는 "정부의 '기업 길들이기' 아니냐"는 푸념도 나왔다. 조금은 친기업적 시각이기는 하지만 "기업 오너에게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못 이상의 가혹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도 균형을 잃은 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무엇보다 땅콩 회항 사건은 반기업 정서와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 기업과 한국 경제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성장 속도가 둔화된 항공 사업에 호텔 비즈니스를 더해 신성장동력을 제시하는 방안을 주도했던 조 전 부사장은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가정주부로 돌아갔다. 그의 행위에 수많은 흠결이 있었고 반성이 필요하지만 "경영 감각만큼은 비상하고 결단력이 남달랐다"고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평가한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복궁 옆 옛 미국대사관 부지에 호텔을 지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했던 대한항공의 계획도 땅콩 회항 사건에 따른 국회의 '재벌 특혜' 논란으로 무한정 지연됐다. 만약 이 사업이 제때 진행됐다면 수천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게 산업계의 분석이다. 평가야 어찌 됐든 사건은 벌어졌고 법의 심판은 내려졌다.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하고 사적 영역은 물론 경영 활동을 재개했을 때 뼛속 깊이 아로새겨야 한다. 그게 우리 사회가 기업인들에게 요구하는 높은 도덕성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일이 '주홍글씨'가 돼서는 안 된다. 조 전 부사장이 언젠가 경영 일선에 돌아와 대한민국의 서비스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투자와 고용으로 국민들 앞에 깨끗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산업부=서일범기자 squiz@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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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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