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자 국제 유가가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급락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강달러와 원유재고량 증가 여파로 유가가 단기적으로 20달러 수준까지 밀릴 수 있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 등 다른 산유국들의 유가 치킨 게임이 당분간 더 가열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내년부터 국제사회 경제제재가 풀리는 이란이 원유 수출에 나서고 미국도 40년 만에 원유 수출을 재개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원유 시장을 둘러싼 악재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에 유가가 상승했다는 점에 비춰 장기적으로는 유가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금리 인상에 재고량 증가까지…유가 급락=미국 금리 인상이 단행된 16일(현지시간) 국제 유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미국이 '제로금리 시대'를 끝내면서 달러화 강세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 데다 미국의 지난주 원유재고가 예상치보다 훨씬 많이 늘어난 것이 직격탄이 됐다. 원유 가격은 대부분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에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는 원유 가격에 하락 요인이 된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1.83달러(4.9%) 하락한 배럴당 35.5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인 2009년 2월 이후 최저치다. 내년 1월 인도분 북해산브렌트유 가격도 1.27달러(3.30%) 떨어져 배럴당 37.18달러 수준까지 밀렸다. 가뜩이나 맥을 못 추고 있는 유가에 이날 전해진 미국 국내 석유재고 증가 소식은 결정타가 됐다. 지난주 미국 석유재고는 14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재고가 480만배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금리 흐름보다는 원유 재고가 더 시장에 부담을 주는 요소라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자은행 UBS를 인용해 "원유 재고 증가가 유가를 끌어내리는 지속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며 "금리 인상 추이보다는 유가 재고량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유국 치킨게임에 유가 20달러대 하락 전망도=상대방에게만 감산을 강요하는 산유국들의 유가 치킨게임도 원유가격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현재 대다수 OPEC 회원국들은 재정 악화를 감내하고서라도 수출량은 줄일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이다. 여기에 내년 경제 제재가 해제되는 이란이 생산량을 더 늘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미국도 석유 수출 대열에 가세할 움직임이어서 전 세계 석유 시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이란이 현재 290만배럴인 하루 생산량을 내년 6월까지 60만배럴 더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원유 공급량이 수요보다 하루 200만배럴이나 더 많은데 추가 물량까지 쏟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하원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자국산 원유수출 재개를 허용하는 법안을 처리하는 데 합의한 것도 유가엔 부담 요인다.
원유 시장 악재가 늘면서 유가 하락을 점치는 전망은 늘고 있다. CEF홀딩스의 워런 길먼 회장은 CNBC 인터뷰에서 "OPEC이 경쟁자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앞으로 18개월 동안은 더 산유량을 유지할 것"이라며 "내년 WTI 가격은 20달러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 미국의 3차례 금리 인상 시기 때 유가가 상승한 것에 비춰볼 때 장기적으로 유가가 회복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1994년, 1999년, 2004년 세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는데 이 시기 모두 유가는 상승했다. 세 차례 금리 인상 직후 6개월간 유가는 각각 32.3%(1994년), 40.7%(1999년), 13.2%(2004년) 상승했고 1년 기준으로는 각각 17%, 75.4%, 5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